‘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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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4.29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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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덕분에 1년 더 시골 들판에서 마음껏 뛰어놀다가 여덟 살에 대전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된 것이다.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엄마는 담임선생님을 찾아 나의 월반 가능성을 상담했다. 그때 선생님은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지호가 처음에는 느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둔전거려서 공부를 잘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충분히 월반해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월반 자격시험을 보도록 안내했다. 나의 1학년 통지표에는 「온순하고 착실함」, 「두뇌가 명석하고 글씨를 잘 씀」, 「성적이 매우 우수함」으로 쓰여 있었다.

당시 월반제도는 1학년을 마친 후에 2학년 과정의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과목 시험을 치러 평균 85점 이상의 성적이면 2학년을 다니지 않고 3학년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그 시험에서 나는 평균 85점 이상을 맞아 3학년이 되어 남들이 6년 다니는 초등학교를 5년 만에 졸업했다.

그러나 이 월반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시작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수채에 나동그라진 동심

담임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3학년 6반 교실 내 자리에 앉았다. 그때가 마침 산수 시간이었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1시간은 몇 초이지요? 아는 사람 손들어 대답해봐요.”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들은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학생들이 신기한 듯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선생님도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 반에 막 들어온 송지호 대답해봐요.”

나는 신나서 대답했다.

“3,600초요.”

“맞았어요. 참 잘했어요.”

월반했지만 공부는 쉽고 재미있었다. 매시간 선생님 질문에 손들어 답했다. 글씨 잘 쓴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시험은 언제나 100점이었다.

나는 100점 맞은 시험지를 어머니께 보여드리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엄마 나 또 100점 맞았어.”

급한 마음에 때로는 신발 한 짝을 신은 채 마루로 뛰어 올라오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빙긋이 웃으며 안아주셨다.

어머니께 보여드린 시험지는 벽에 박아놓는 큰 못에 차곡차곡 꽂아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철로를 건너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어떤 남자애가 뛰어와서 나를 경사진 길 아래로 밀쳐버렸다.

나는 순간 중심을 잃고 그대로 굴러 철둑길 아래 더러운 물이 흐르는 수채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너무 놀라 울면서 간신히 일어나보니 옷도 가방도 신발도 더러운 흙탕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아픈 것도 잊은 채 처음으로 오늘 입고 나온 새 옷과 가방과 신발이 걱정되어 엉엉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서울 오빠한테 다녀온 엄마가 바로 전날, 정말 큰맘 먹고 사다주신 예쁜 원피스와 나이론 머리 리본, 가방과 운동화였다.

처음 보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머리를 올려 묶고, 책보가 아닌 멋진 가방을 메고, 검정 고무신이 아닌 코빼기 운동화를 신고 으스대고 자랑하고 싶어 등교한 꿈같은 날이었다. 그날 벌어진 처참한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난생 처음 가져본 물건들이 다 망가져 겁이 나서 엉엉 울면서 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본 엄마는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엄마, 지수 동생이 나를 철둑에서 밀어서 이렇게 됐어.”

“다친 데는 없어?”

화가 잔뜩 난 엄마는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지수 집으로 달려갔다. 지수 집으로 들어가니 지수 할머니가 나오셨다.

엄마가 화가 난 채로 대뜸 지수 할머니에게 말씀하셨다.

“할머니 손녀가 동생을 시켜 내 딸을 이 꼴로 만들었으니 이대로 담임선생님한테 같이 가십시다. 이대로 그냥 놔두면 계속 이런 일이 생길 테니까요.”

그러자 지수 할머니가 엄마에게 사정사정하며 말했다.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없게 타이를 테니 한 번만 용서해줘요.”

마음 여린 엄마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다짐만 받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에 있는 우물 펌프대로 나를 데려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기고 가방과 신발도 빨아주셨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온 엄마가 내게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지호야, 너도 이제부터는 그냥 맞지만 말고 같이 싸워. 네가 힘에 부치면 엄마가 도와줄게.”

지금까지 엄마는 내게 친구와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친구들이 뭐든 먹고 있으면 절대 못 본 척하여 얻어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랬던 엄마가 이제부터는 너도 싸우라니!
내가 월반하여 3학년이 되자 시비 거는 친구들이 많았다.

“너는 진짜는 2학년인데 건방지게 3학년에 들어와 상급생 우리한테 친구처럼 반말하고 까불어?”

그 친구들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친구들로서는 약올라서 그러나보다 하고 참았다. 그런 데다 내가 그 친구들보다 공부까지 잘하니 시기와 질투로 부화도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이해도 했다.

그 친구 중에 유난히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괴롭히던 애가 지수였다.

그래서 그날 일도 지수가 시켜서 그랬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아마도 그날따라 공주처럼 예쁘게 꾸미고 나타난 내가 지수로서는 더욱 얄미웠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여자 선생님은 싫어!

그런 일을 겪은 후 나는 싸움에서도 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엄마 말씀대로 싸움을 걸어오는 친구가 있으면 머리채를 잡히기 전에 내가 먼저 머리채를 잡고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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