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친환경으로 나아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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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친환경으로 나아 가렵니다”
  • 오현구기자
  • 승인 2021.05.0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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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면 ‘박영석 씨’
박영석 씨가 고추 모의 생육상태를 살피고 있다.
박영석 씨가 고추 모의 생육상태를 살피고 있다.

 

박영석(62) 씨는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에서 친환경 유기농 방식으로 고추 농사를 짓는다.

비닐하우스 바깥에는 물 200ℓ가 들어가도 충분할 만큼의 커다란 고무통 여러 개가 놓여 있다. 박 씨는 고무통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본다. 내부에는 마른 고추 줄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고추 줄기 밑으로 이름 모를 액체가 보였다. ‘액비(液肥)’가 만들어지고 있는 통이다.

박 씨의 설명에 의하면 “액비는 친환경 유기농 방식에서 화학비료 대신 사용하는 것으로 일종의 물거름”이라고 했다.

또, 비닐하우스 안에는 물 100ℓ가 들어갈 수 있는 플라스틱 통이 여러 개 있는데 뚜껑을 일일이 열고 상태를 살핀다. 통 안에는 흐리고 탁한 흙탕물 같은 액체가 가득 들어있었는데 박 씨는 이 액체를 “농약 대신 사용하는 천연 농약”이라고 했다.

깨끗한 곳에서 살고픈 동경심

박 씨는 귀농 전 대전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했다. 겨울에는 쉬는 날마다 석탄리 쪽 대청호로 빙어낚시를 왔다. 처음 낚시를 왔을 때 주변 경치가 너무 좋아 석탄리 안쪽까지 차로 돌아봤다고 한다. 상수도 보호구역이어서 깨끗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빙어낚시는 점점 잦아지게 됐고 도시보다 깨끗한 곳이 좋다는 생각도 점점 커졌다.

그러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동경심(憧憬心)이 들었다.

동경심을 이기지 못한 박 씨는 6년 전인 2015년 동이면 석탄리 소재 농지를 매입한 후 주말 농부가 됐다. 그 후 시내버스 운전사 정년을 맞은 2019년 귀농을 실행하게 됐다.

석탄리에서 계속 농사를 짓던 사람들에게 귀농 1년 차 농부 박 씨는 풋내기 중의 풋내기 농사꾼이었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박 씨를 보며 ‘풋내기 농사꾼의 치기’로 여겼다고 한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소비자가 찾을 만큼 상품 가치가 있으려면 농약과 비료를 쳐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농사에 대해서 잘 모르던 박 씨는 친구가 주는 채소들이 큼지막하니 상품 가치가 높아 보여 “너 농사 잘 짓는다” 부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친구가 농약과 비료를 뿌려가며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나 그거 안 먹어. 네가 농사지은 것 네가 먹냐?”라고 했단다.

친구는 “왜 안 먹냐”고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친구에게 박 씨가 “비료와 농약 주는 것을 보니까 겁나서 못 먹겠다” 했더니 친구도 “이렇게 상품 가치가 있어야 고객들이 사 먹는 거야” 하더라는 것.

귀농을 결정할 당시 박 씨의 아내는 시골에서 살던 경험이 있어서 대전을 벗어나기 싫어했다. 그래서 옥천으로 귀농하려는 박 씨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당신이 무슨 농사를 하겠다고 그러냐”며 “고추 농사는 농약을 많이 쳐야 하는데 게다가 친환경으로 하면 고추 한 근이나 따겠냐?”면서 강하게 반대했다.

박 씨는 “되게 할 테니 당신은 팔아만 줘”하고 자신감으로 맞섰다고 했다. 박 씨가 보인 자신감에 아내는 “파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잘만 지어 봐요” 하며 귀농에 동의해줬다. 하지만 아내는 옥천으로 같이 오지 않았다.

유튜브 동영상으로 배운 친환경 유기농법

귀농한 사람들은 농지, 주거, 농기계 등을 마련하기 위해 귀농 초창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박 씨는 귀농 초창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유튜브’ 동영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비닐하우스 짓는 법을 배워 1,100만 원을 절약했으며 친환경 유기농법을 배웠다.

박 씨가 유튜브를 배우게 된 계기는 대전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할 당시 종점에서도 내리지 않는 학생이었다. “왜 안 내리니?”하고 물었더니 “유튜브가 너무 재밌어요”라며 “별것이 다 나와요” 하길래 “나도 그것 좀 가르쳐달라”고 해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고추가 시커멓게 변하는 탄저병이 돌았던 적이 있다. 이 당시 박 씨도 친환경 농약으로 될까 싶어 식은땀까지 났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침저녁으로 고추에 친환경 농약을 살포하는 일뿐이었다. 다행히도 닷새 후 고추 탄저병이 잡혔단다. 이걸 알고 주변 사람들이 친환경 유기농법을 인정해줄 때 귀농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처음에는 고추를 팔기 위해 옥천 로컬푸드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수수료를 받지 않으면 운영할 수 없다”고 하는데 “수수료는 통상적으로 판매 금액의 10~15%를 받았다”며 “백화점 수수료와 마찬가지로 너무 비쌌다”고 했다. 그 이후로 아는 사람을 중심으로 고추를 팔았다. 농장에 와서 친환경 무농약 농법을 보고 간 사람들로부터 “고추가 정말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 수확한 고추가 모조리 팔렸다. 박 씨는 이 때문에 “수확한 고추의 판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박 씨는 이어 “준비를 완벽하게 해도 고생하는 것이 귀농이다”며 귀농 후배에게 “열 번 스무 번 생각하고 와야 귀농에 성공할 수 있다. 꿈에 부푼 귀농으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주위 사람들하고 친해야 좋다. 시골에 오면 마을 사람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님처럼 아버님처럼 여기고 도와줘야 영농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조언을 했다.

귀농에 필요한 옥천군의 지원에 관해서는 “집을 지으려고 하면 가족이 아니라 부부가 살려고 하는 거라서 56~59㎡(17~18평) 넓이면 충분하다”며 “귀농자들에게 정착에 필요한 영농주택을 수월하게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족에게는 “애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우리 두 부부 노후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이 발생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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