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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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17)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5.0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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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만 보면 흘리는 눈물

조헌이 부평 귀양에서 풀려난 때는 1580년(선조 13년) 37세가 되던 해 4월이었다. 2년 남짓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 믿고 의지하던 부친과 가장 아끼고 사랑해 주시던 스승 토정 선생도 세상을 뜨셨다. 인생에 큰 기둥과도 같았던 두 분을 모두 유배 중에 잃었고 죄인의 몸이라 문상도 하지 못했으니 항상 가슴이 아팠다.

조헌은 지체할 겨를도 없이 고향 김포로 달려가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묘소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임종도 지키지 못한 불효를 빌었다. 부친은 벼슬도 하지 않았고 집안도 가난했으나 면학과 수성으로 도리를 가르치신 분이었다. 더구나 열 살에 어머니를 잃은 조헌에게 아버지는 더욱 소중한 존재였다.

 부친께서 임종할 무렵에 소고기를 먹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집이 가난해서 해드리지 못했다는 식구들의 말에 안타까운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후부터 그는 소고기를 대하면 눈물을 흘렸고 평생토록 소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뵌 그는 곧 토정 선생의 묘소가 있는 보령으로 떠난다. 토정 선생은 조헌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신 스승이었다. 조헌이 통진 현감으로 있을 때 먼 길을 찾아와 시정을 논하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유배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김포 생가를 찾아 문상도 했다.

토정 선생은 조헌이 홍주목 교수로 있을 때 처음 찾아뵙고 사제관계를 맺었으며 선생과 더불어 민폐의 구제책과 경세책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고 토론을 거듭했다. 당시 사람들이 조헌을 잘 모르고 평하기를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으며 재주가 적고 쓸 만한 것이 없다고 할 때도 토정은 초야에 묻힌 인재로 쓸 만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중봉 뿐이라고 했다.

어느 날 토정 선생과 지리산에 간 일이 있었는데, 조헌이 토정 선생의 모든 언행과 일거일동에 탄복하여 어느 것 하나 가르침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이에 토정 선생이 여러 사람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은 중봉의 스승이 나인 줄 알지만, 중봉이 정말로 내 스승인 것을 모르고 있다.”라고 했으니 토정과 조헌의 각별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스승을 생각하면 지난날이 그립기도 하고 한없이 송구하기도 했다. 토정 선생의 묘소에 엎드린 조헌은 눈물을 흘리며 제사를 올렸다.

제 토정 선생 문

“후학 은천 조헌은 토정 선생의 영전에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아! 선생께서 살아계실 때는 나라와 백성이 의지했으며 도가 부친 바 있었고 선비들이 돌아간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생께서 작고하신 바 나라에는 삼강의 기둥이 없어졌고 백성들은 사유와 같이 희망하던 뜻을 잃었습니다. 도(道)는 고요하고 쓸쓸하게 됐으며 후학들은 향해 갈 곳이 없게 됐습니다. 헌같이 어리석은 자로서 의문이 있으면 어디에다 질정(質正)하며 죄과가 있으면 누가 경계해 주겠습니까. (중략)
아! 선생은 겨우 이 정도를 사시고 마셨습니다. 우매한 헌은 소호에서 늦게 사 선생을 뵀습니다. 그때 선생께서는 저를 권하여 힘쓰게 해 주심에 너무도 부지런하셨고 여러 차례나 저를 찾아 주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명승지를 저와 함께 가셨고 멀리 두류산으로 은사를 방문도 하였습니다. 저를 이끌고 다니실 때 선생의 동정과 언행은 모두 처세의 교훈을 암시하여 주셨습니다. (중략)
아! 슬프다. 시변이라 할까. 아니면 천명이라 할까. 사방을 둘러보아도 지극한 말 한마디 들을 곳이 없습니다. 선생의 묘소를 둘러보니 풀뿌리가 얽혀 있습니다. 선생님을 다시 받들 길이 없어 통탄할 생각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통탄하고 사모를 해도 소용이 없군요. 한마디 거친 제문으로 영 이별을 고하고 닭고기와 술을 올려 저의 조그만 정성을 표하오니 아! 선생은 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정을 감촉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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