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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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4)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5.06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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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싸움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싸움꾼이라는 사실이 통지표에 기록될 정도였다. 당시 1학기 통지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두뇌 명석하여 성적 우수하나 싸움을 잘함」

싸움을 잘한다고 적힌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려 엄마를 바라보자,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채신 듯 말씀하셨다.

“전처럼 얻어맞고 다니지는 마라. 싸움 잘한다고 적혀 있어도 괜찮아.”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이 몇몇 친구들을 지나치게 편애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반에서 가장 부자인 돼지털공장집 딸 영이, 자모 회장인 딸인 숙이 그리고 반장 선이, 이들 세 친구를 선생님이 어린 내 눈에도 보일 정도로 편애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벽의 대못에 차곡차곡 꽂아둔 100점 맞은 시험지를 꺼내 보고 위안 삼았다.

“진짜는 내가 일등인데 뭐.”

하지만 3학년을 마감하는 종례에서 주어지는 우등상도 그들 영이, 숙이, 선이 3명이 나란히 1, 2, 3등상을 받았다. 내가 받은 것은 4등에게 주어지는 진보상이었다. 화가 났다. 무엇보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께 미안했다. 우등상을 받아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 죄송했다.

그동안 내가 맞은 점수로 보면 우등상이 분명한데, 이상하고 속상하기만 했다. 나의 속상함을 눈치챘는지, 그날 종례가 끝나고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호야, 네가 우등상이 아닌 진보상을 받았지만, 월반한 너로서는 공부를 정말 잘한 것이란다. 실망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표정도 밝지는 않았다. 나를 위로하는 표정에 미안함이 엿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과연 우리 집이 부자였다고 해도 내가 우등상을 받지 못했을까’하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의 상처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엄마, 나 진보상밖에 못 받았어. 선생님이 예뻐하는 애들에게 상을 준 것 같아.”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미는 상장을 받아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괜찮아, 월반해서 진보상 받은 것은 다른 애들 1등보다 더 잘한 거야.”

어머니의 위로에 애써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성적 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는 여자 선생님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간절하게 4학년 담임은 남자 선생님이길 바랐다. 여자 선생님이라 편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4학년 담임선생님 역시 여자 선생님이었다. 다소 실망이 되었다.

다행히 4학년이 된 후에는 더는 왕따를 당하지 않았고, 공부는 여전히 쉽고 재미있었다. 시험은 항상 100점이었고, 100점 맞은 시험지는 한 장도 빠짐없이 벽의 대못에 꽂아두었다. 그러면서 3학년 때 우등상을 탔던 세 명의 시험지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때마다 안심할 수 있었다. 점수를 확인하면 그 친구들보다는 내가 늘 100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풍 같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가 되면 괜히 불안감이 들곤 했다. 그때는 영이네 집에서 전체 선생님들의 식사와 간식을 도맡아 바리바리 싣고 왔고, 자모 회장인 숙이 어머니는 선생님을 위해 온갖 편의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마 우등상은 성적대로 하겠지, 하는 기대는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4학년이 끝나는 종례에서 우등상 시상이 있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내가 우등상을 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또 한 번 실망이었다.

3학년 때와 똑같이 영이, 숙이, 선이 3명이 나란히 우등상을 받았고, 나는 또 진보상이었다. 식이 끝난 후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따로 불러서 하시는 말씀까지 똑같았다.

“지호야 네가 진보상을 탔지만, 공부는 참 잘했단다. 실망하지 말고 힘내서 공부 더 열심히 해.”

왜 선생님들은 내게 미안해하면서까지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나를 불러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또다시 그들 세 명에게 우등상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자 선생님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여자 선생님이라 부자이고, 자모 회장이고, 반장인 아이들을 냉정하게 성적으로만 보지 않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5학년 담임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길 기도했다.

내가 우등상을 못 받은 것은, 여자 선생님 때문이라는 반항감으로 남자 선생님은 틀림없이 공평해서 내가 우등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드디어 만난 남자 담임선생님

5학년 담임은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남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오자마자 ‘정진우’라고 칠판에 이름 석 자를 크게 쓰셨다. 그날부터 나는 기가 살아났고 신이 났다. 세상까지 달라 보였다. 단지 남자 선생님을 만났을 뿐인데, 신기할 정도로 새로운 세상 같았다.

실제로 선생님은 그 세 명의 친구들을 편애하지 않으셨고, 내가 보기에도 매사 공정하고 공평했다. 선생님은 유난히 노란 눈으로 늘 웃으며 우리를 대해주셨다. 또 선생님은 서예에 조예가 깊어 우리에게 붓글씨를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나는 글씨를 잘 쓴다는 칭찬을 많이 받곤 했는데, 붓글씨도 남다른 재주로 잘 써서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환경미화 심사 때는 교실 사방에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등 표어를 내가 도맡아 써서 붙이라고 하셨다. 교실에 필요한 붓글씨 표어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5학년이 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공부도 잘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나를 친구들도 더는 괴롭히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대장 노릇을 했다. 나는 반장이 되어 어린이회도 이끌었다. 선생님은 또 주산 실력이 뛰어난 나를 무척 아껴주시며, 시험성적을 내는 날엔 비밀리에 나를 선생님 댁으로 불러 성적을 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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