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주인이다
상태바
마음이 주인이다
  • 황법명 수필가
  • 승인 2021.05.06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가 보니, 아~ 이제는 핏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금실같이 내리는구나.’

이제 봄의 문턱에서 비가 좀 왔으면 했다. 그런데 명주실 같은 보슬비가 진눈깨비 되어 밤새 내렸다.

춘하추동 산은 말없이 적연부동(寂然不動)이다. 계절의 의상은 다채롭게 변한다. 어디 그뿐이랴.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 오솔길이나 논과 밭의 흙, 사철 푸르던 솔도 계절 감각을 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먼저 변화를 알리는 것은 언제나 비 님(雨)이시다. 동탁의 가을에서 휴면의 겨울로 접어들 때 후드득 낙엽 위로 찬 서리를 전해 주는 것이 겨울비요, 그 기나긴 침묵의 겨울을 잠 깨우는 것은 봄비의 사명이다.

짧은 봄바람이 불면서 꽃비가 지루하도록 느껴질 때면 어느새 신록의 여름,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식혀 풍성한 가을의 수확을 가져다 주는 것은 가을비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하지만 도회지에서는 좀처럼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청정수가 아니더라도 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돗물이고 보면 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농사지을 걱정이 없으니 그렇고 자연을 마주할 공간이 없으니 더더욱 그러하다.

도시인에겐 오히려 눈, 비가 늦도록 시집 못 간 시누이처럼 밉상이고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아스팔트 위에 눈, 비가 어중간하게 내리는 날이면 도로가 막히고 운행하는 차량은 거북이가 되니 말이다.

인도에서도 도무지 마음이 편치 못하다. 길이 미끄러운 것은 고사하고 지나가는 차량이 흙탕물을 튀겨 옷을 버리기 십상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차를 피하느라 더더욱 아슬아슬해진다.

시골의 비는 언제나 곱상스러운 새댁 같다. 계절의 전령이어서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와도 풍년 기약이 된다. 산중의 눈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르고 비가 한 번이라도 내리면 얼어 죽은 듯이 보이던 대지에서 생명이 되살아난다.

하얗게 메말라 있던 흙은 빨갛게 홍조를 띠고 까맣게 윤기가 난다. 개울가의 버들강아지와 버드나무도 솜털 같은 새 눈이 싱그럽다. 비가 없는 봄은 생각할 수 없다.

비의 전주곡이 없이 훌쩍 봄이 와 보라.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도대체 기꺼이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한다. 춘광무처 부개화(春光無處 不開花)라. 봄빛에 꽃이 피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봄빛도 아름답고 윤택하며 그리고 넉넉한 빛을 띠고 싶다면 반드시 비를 동반해야 한다.

우리 인간도 진정 빛을 발하는 행복을 원한다면 마음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매사에 주체를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봄비는 계절의 기수요 마음은 자신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봄을 알리는 나팔수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환희의 찬가가 소리없이 울려 퍼질 때 이 세상은 자비의 안락(安樂) 국토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