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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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18)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5.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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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석담에서 율곡 선생과 보낸 가을

토정 선생의 묘소를 참배한 조헌은 서천의 명곡서당을 찾았다. 서천은 과거 홍주목 교수로 있을 때 분교관을 겸했던 고장이다. 그곳에서 한동안 강학을 하고 여름이 지날 무렵 김포로 돌아온다.

김포로 오는 길에 날이 저물어 점사에서 머물게 됐다. 조헌이 머무르는 방에 선비 한 사람이 그곳에서 묵어갈 생각으로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용모가 뛰어난 것이 보통사람 같지 않았다. 그는 이생이라는 선비였는데 조헌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는 다른 곳으로 가려고 일어섰다. 그때 조헌이 그를 불렀다.

“이 집도 꽤 넓으니 하루를 같이 지내는 것도 무방하오.”

그 말에 가던 걸음을 멈춘 이생은 다시 돌아와 머리를 조아려 성명을 묻고 한 방에 머물게 됐다.

저녁이 되자 조헌은 종을 불러 관솔불을 밝히고 행낭에서 책을 꺼내 의관을 정제하고 단정히 앉아 밤이 깊도록 책을 봤다. 이생이라는 사람이 선비로서 가히 이야기할 만하다고 여긴 조헌은 『격몽요결』을 꺼내 보이며 이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수신과 요체가 여기에 갖춰져 있어 선비로서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생이 송구한 마음으로 경청했다. 조헌은 행낭에서 종이를 꺼내 책을 만들고 전사해 이생에게 주고 새벽닭이 울 무렵에야 자리에 누웠다.

그로부터 이생이 며칠 동안 조헌을 동행하게 되는데 한 시도 책 보기를 멈추지 않았고 수기독행지사가 아닌 것이 없었다. 이생이 조헌 선생의 말에 실린 것을 살펴보니 모두가 책과 관솔 뿐이었다.

김포로 돌아온 그가 다시 해주 석담으로 향한 것은 가을이 될 무렵이었다. 석담에는 그가 가장 존숭하는 율곡 선생이 계셨다. 율곡 선생은 그가 홍주목 교수로 있을 때 토정 선생의 권유로 찾아뵙고 사제의 연을 맺게 됐다. 그동안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통진 현감으로 나갈 때는 특별한 당부의 말씀도 주신 바가 있었다. 율곡 선생은 조헌의 사상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율곡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호를 후율이라 정하고 평생 그를 존숭했다.

조헌은 여러 달 동안 석담에 머물며 율곡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한편, 유생들에게 강론도 했다. 어느 날 율곡 선생과 그리고 여러 사람과 호연정(浩然亭)에서 시를 주고받았다.

율곡은 ‘대중(大仲), 여식(汝式), 여러 사람과 호연정에 올랐다(與大仲汝式諸君登浩然亭)’라는 제목의 시를 짓는다.

相携地上仙 지상의 신선을 서로가 부여잡고
坐弄滄海月 둘러앉아 창해(滄海)에 달빛 희롱하니
秋光滿上下 가을 경치 천하에 가득하여
萬景皆淸絶 만경이 모두 절승(絶勝)이로다.
神飙吹嫋嫋 맑은 바람 산들산들 불어오는데
玉笛雲衢徹 피리소리 구름 가에 사무치누나
臨觴忽椆悵 잔을 들고 슬픈 생각 금치 못함은
美人天一來 저 하늘가에 우리 님이 계시겠기에

이에 조헌은 율곡 선생의 운을 받아서 시를 지었다.

煙島乘桴晩 노을 진 섬 저물어 뗏목을 타니
結亭高壓巔 새로 지은 정자가 산마루를 눌렀네
潮聲洲外壯 조수 소리 섬 밖에 웅장하고
松影水中懸 소나무 그림자는 물속에 달렸도다
岫色靑連海 멧 뿌리 푸른빛은 바다에 닿은 듯하고
風光爽滿天 맑은 바람 기운은 하늘에 가득 찼네
襟懷方丈闊 가슴속이 방장산같이 넓었으니
何處更求仙 어디서 다시 신선을 찾을까

석담에서 율곡 선생과 몇 달을 보낸 조헌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떠나 올 때는 율곡 선생이 호연정까지 나와서 시를 지어 배웅했고 황해도 관찰사 이해수도 나와서 배웅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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