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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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19)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5.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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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 조헌(趙憲)과 관찰사 정철(鄭澈)

부평 귀양에서 풀려난 조헌은 부친과 토정 선생의 묘소를 찾아 제사를 올리고 해주(海州) 석담(石潭)으로 율곡 선생도 찾아뵙고 세상을 주유하며 한 해를 보냈다. 그 이듬해 1581년(선조 14년) 조헌의 나이 38세 때 공조좌랑(工曹佐郎)에 임명됐다가 얼마 되지 않아 전라도사(全羅都事)로 부임한다. 도사는 관리의 감찰과 규탄 등의 일을 맡아보는 직책이었다.

그가 먼저 한 일은 백성들에게 지극히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연산조(燕山朝)에 만든 공물의 품목을 정한 공안(貢案)을 혁파할 것과 율곡의 외롭고 위태함을 논하는 소(疏)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임금의 비답은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어느 날 도원(陶原)에서 여러 군자와 노닐던 조헌은 즉흥시를 읊는다.

靜裏冥觀萬化源 가만히 만화(萬化)의 근원을 살펴보니
一春生意滿乾坤 봄 속에는 삶의 뜻이 가득 하구나
請君莫問囊儲乏 묻지 말게 그대들 주머니에 가진 것 적다고
山雨終朝長菜根 산에 비 그친 아침이면 나물 뿌리 자란다네
坐見閒雲度遠岑 한가로이 먼 산봉우리를 넘는 구름 보며
俯聽溪曲有淸音 맑은 시냇물 소리 굽어 듣는다
幽居莫恨無人識 그윽한 삶을 남들이 모른다고 한하지 마라
千古仁賢獲我心  천고의 어진 사람에게서 나를 찾는다네

전라도 도사로 복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됐다. 조헌의 정철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친교를 맺고 있던 이발(李潑), 김우옹(金宇顒), 최영경(崔永慶) 등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정철은 인간 됨됨이가 소인일 뿐만 아니라 흉험한 인물이어서 그와 함께 일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비방하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철이 관찰사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은 조헌은 전라감영에서 떠나려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벼슬을 버릴지언정 소인배와는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정철이 전라감영에 도착할 무렵 조헌은 이미 전주를 떠나 삼례에 가 있었다. 감영에 도착한 정철은 사람을 보내 ‘도사(都事)도 사무를 인계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토록 바삐 떠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하니 조헌은 하는 수 없이 전주 감영으로 되돌아왔다.

정철은 술자리를 정중히 마련하고 조헌과 마주 앉았다.

“도사께서 나를 흉험한 인물이라고 하여 같이 일을 할 수 없다고 떠나려 하셨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러하옵니다.”

“도사와 나는 아직 서로를 모르고 지내온 처지인데 어찌하여 내가 흉험하다는 것을 알겠소. 열흘이고 한 달이고 같이 일을 하면서 정상을 살핀 후 사실대로 내가 흉험하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 나를 버리고 떠나도 늦지 않을 것이오.” 하고 정철은 조헌에게 같이 일할 것을 간곡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내 뜻은 이미 정한 바가 있습니다.” 하고 정철의 요구를 완강히 뿌리치고 결국 전라감영을 떠나고 말았다. 정철은 이 사실을 조헌의 스승인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에게 알리고 그를 자기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비록 정철이란 인물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스승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결국 두 스승의 권유에 못 이긴 조헌은 다시 전주 감영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정철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정철은 본디 술과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임지에 있으면서도 술과 풍류는 여전했다. 조헌은 그것이 못마땅했다. 어쩌다 정철과 술자리를 함께할 때면 늘 말하기를 “수령이라는 자들은 백성의 고혈(膏血)을 빨아 자기 뱃속이나 주머니를 채우는 데 급급할 뿐이고 더러는 그것을 가지고 자기 상관에게 아첨하기가 예사며 감사(監司)라고 하는 자는 백성의 즐거움과 슬픔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술이나 마시는 것을 직책으로 삼으니 이것이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게 있는가.” 하고 책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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