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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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폴리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1.05.2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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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아침저녁으로 서늘함이 느껴지는 요즘, 전에 없이 남편은 마음이 쓸쓸하다고 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산다고 입버릇처럼 잔소리했는데 지난 날을 뒤돌아보며 이제는 꿈이 없다고 한다. 서글퍼하는 남편이 딱한 생각이 든다.

부랴부랴 간단하게 짐을 챙겨 둘이서 길을 나섰다. 행선지도 없이 가다가 전라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간 김에 지난 여름 유럽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보자면서 한국의 나폴리라고 하는 여수로 향했다. 여수를 몇 번 가보기는 했지만 건성으로 슬쩍 다녀와서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일행없이 단둘이니 급할 것 없이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여행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 지나치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여수의 여기저기를 소개받았다. 여수는 세계의 4대 미항(美港)에 속해 있으며 365개의 그림 같은 유‧무인도가 있다고 자랑을 한다. 그분들의 자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오동도 다리를 건너 동백섬, 거문도, 백도, 향일암 등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보니 여수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해 3대 미항이라고 알려진 나폴리에서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안을 둘러본 적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참으로 아름다운 카프리섬과 쏘렌토, 나폴리의 섬들이 바다를 향해 팔 벌려 손에 손잡고 끌어 안아 대형 호수를 만든 것 같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폴리 도시를 보고 실망하고 돌아왔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곳 여수는 해안은 물론이고 들녘과 도시 전체가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여수항 파란 바다에서 크고 작은 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혹은 무리를 지어 떠있는 모습이 나를 반하게 했다. 크고 작은 수많은 섬은 마치 모형으로 만들어 띄워 놓은 것만 같다. 그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엊저녁에 융숭한 대접을 받아서인지 인심까지도 좋아 보인다. 예전에 친구들과 보길도와 해남에 갔다가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돌아왔는지 다시는 전라도 쪽으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와서 보니 그동안 내가 편견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거문도

여수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 거문도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거문도의 지형이 마치 작은 나폴리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여섯 개의 마을로 둥그렇게 이루어진 거문도의 마을들과 야트막한 산들이 잔잔한 바다를 감싸 안고 있어 아주 평화로워 보인다.

거문도는 큰 문장가들이 많아 거문(巨文)도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곳이 유배지였단다. 지금이야 교통이 좋아져 뱃길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온종일 가야 했단다. 머리 좋은 인재들이 부귀와 영화를 내려놓고 인적 없는 외딴섬에 와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복귀될 날을 기다리다 한 많은 세상을 마쳤을 생각을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해안선을 따라 마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수월산 등대가 있는 쪽으로 산책을 했다. 검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동산에는 울창한 동백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바람조차 뚫고 들어올 수가 없는지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동산 반대쪽 외진 곳에 떠 있는 등대 아래로는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진다. 고깃배들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다가 길을 잃었을 때 반가움에 뱃머리를 돌렸을 등대지만 등대지기는 너무나 외로울 것 같아 가슴이 짠하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 밀려와 부딪치는 하얀 파도가 너무 세서 많이 아플 것 같다. 옛날 귀양 온 선비들이 두고 온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리울 때 이곳에 앉아 부딪치는 파도를 보고 한풀이를 하며 위안으로 삼았겠지! 

수많은 등대를 보고도 그저 그러려니 했었는데 큰 뜻을 가진 선비들의 깊은 사연 때문일까. 오늘따라 등대지기의 애환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더욱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내가 병석에 누워 사경을 헤맬 때 옆에 남편과 자식들이 있음에도 외로웠는지, 젊었을 때 좋아했던 어느 가수의 “등대지기 이십 년이 한없이 서글프다” 는 등대지기란 노래가 떠올라 입속으로 흥얼거렸던 생각이 난다.

아름다운 거문도, 많은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한이 많은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인심 좋아 보이는 거문도가 왠지 포근해서 한번 찾아온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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