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게 녹슨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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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게 녹슨 머리
  • 오희숙 수필가
  • 승인 2021.05.20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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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했다. 지하철 카드가 정지됐단다. 한 번 두 번 다른 칸으로 옮겨서 또 한 번 어제저녁에도 통과했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요즘엔 직원도 없다. 모두 기계로 하고 있으니 당황해서 앞이 캄캄했다. 기계 앞에서 방방 뛰며 누가 좀 도와 달라고 하니 다들 바쁜 아침 출근 시간이라 그냥 갔다. 차 시간 놓치면 안 되는데 싶어 마음이 더 바빴다. 몇 번을 도와 달라니 오십 대 아저씨가 왔다. “우대로 하셔야 돼지요” “아니요 그냥 표만 뽑아주세요” “나도 바쁜데 어르신 해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하는데 어디서 직원이 왔다. 표를 타고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 카드가 왜 정지됐나 알 수 있어요?” 하니 “아이고 진작 보여 주셨어야죠”

직원이 카드를 대도 안 됐다. “여기로 나가세요” 하며 옆 창구로 나가게 했다. 나를 도와주려던 아저씨는 한 대를 놓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못 타셨네요. 고마웠어요. 죄송하고요” 인사를 하고 다음 차를 탔다. 영등포에서 내리니 개찰을 안 해서 못 나간단다. 할 수 없이 옆으로 나와 이 표를 반납해야 하는데 받지를 않는다.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안내하는 곳에 줬더니 “여기서는 오백 원을 못 받으니 저기 가서 하세요” 기계로 가서 하란다. “오백 원 필요없다”고 하며 왔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교통카드로 하면 되는데 왜 표를 사려고 했는지 더 기가 막혔다. 이렇게 안 돌아가는 머리가지고 어쩐단 말이냐.

요즘 이것 뿐이 아니었다. 밖에서 지갑을 잃어 버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집에 벗어놓은 코트 주머니에서 나왔다. 복지관에서 식권을 사서 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없다. 가방을 샅샅이 뒤지며 찾았었는데 없었다. 전에는 다시 사면 됐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한 장 밖에 못 산다. 그냥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지갑을 뒤졌더니 얌전히 접혀서 넣어져 있었다.

어이가 없다. 수업 끝나면 식사하러 가야 하는데 뭐하러 지갑에 넣었을까. 넣었으면 왜 생각이 안 났을까. 무슨 습관으로 은연 중에 넣었을까, 녹슨 기억력이 한심스럽다. 나도 내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내 생각이 백 프로가 아니라 거짓말이 많다. 싱크대 앞에서 냉장고 문 열고 들여다보면 왜 왔는지 모른다. 이런 것은 다반사다.

기차로 오면서 카드를 자세히 봤다. 서울특별시 시니어패스(어르신 교통카드)였다. 내가 서울시에서 옥천으로 이사 온 지 1년 9개월이 됐다. 그런데 몇 번 서울에 가면 그냥 사용하면 됐다. 어차피 무료니까 썼는데 2015년 1월 15일로 서울 시민에서 퇴출됐다. 이제 기계 앞에서 무임승차하는 것을 차분히 배워야겠다. 건망증으로 끝나면 되는데 치매는 아닐까? 걱정된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백세시대라 하는데 건강하게 백 세여야지 누워서 제정신 아니게 오래 살면 뭐하겠나 싶다.

어제 아침을 먹으며 손녀딸에게 “할머니는 꿈이 있다. 전에는 꿈이 없었어. 그래서 할머니는 하나님께 75세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했다. 한 삼 년 동안 시골에서 흙장난하고 놀다가 조금 더 사셨으면 좋을 텐데 할 때 간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꿈이 생겼어. 할머니 이름으로 책 한 권 나오는 꿈 참 좋지, 너희들도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해주렴” 했는데 한 시간도 안 돼서 황당하게 처신도 못 하는 한심스러운 노인으로 변했다. 그래도 아직은 자신 있었는데, 하면 된다고 마음으로 다짐했는데 한 살 더 먹었다고 그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크는 아이들이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큰다지만 늙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제 점심 끝나고 군서 장령산으로 드라이브하면서 코에 바람 넣을 때는 참 상쾌했다. 활짝 갠 하늘을 보면서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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