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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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문맹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5.2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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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이 발행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름. 또는 그런 사람’을 ‘문맹’(文盲)이라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식으로 공부할 기회를 놓쳐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문맹 또는 문맹인이라 부른다. 실제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 대부분은 최소 60살 이상된 사람들로 당시 시절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공부는 무슨 얼어죽을 공부냐라며 죽자살자 일만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얼마든지 ‘문맹’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공부보다는 당장에 고픈 배를 채우는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살기 좋은 시대에 아이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 공부를 못한다는 건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고등학교까지 무상으로 배울 수 있는 지금의 환경에서 우리말마저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면 다시 한번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언젠가 한국교육정책연구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학년은 중3인데 문해력은 중1~2

예를 들면 이렇다. 조금은 어려운 단어일수도 있지만 ‘일탈’(逸脫)이 그것이다. 이는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이라는 뜻으로 정상적인 행동이 아닌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이를 ‘일상적인 탈출’이라는 웃지 못할 답변을 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또, “취업처에서 도장공을 모집하고 있으니 그곳에 취업할 생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태권도를 잘해야 하나요” “도장 파는 곳인가요”라는 답변과 ‘문상’(問喪)이라는 질문 역시 ‘문화상품권’의 준말 아니야고 대답했다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대학입시를 앞둔 고3년생들이.

이들 학생들에게서 ‘문해력(文解力)’이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실제로 당시 조사에서 중학교 3년 학생 30.8%가 18점 만점에 16점을 얻었으며 13점에서 16점을 얻은 학생은 46.2%, 10점에서 12점을 얻은 학생은 20.5% 그리고 9점 이하도 2.6%나 있었다.

즉, 66.7%가 학년은 중3인데 문해력은 중2나 중1 수준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여기에는 단연 줏대없는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정책은 물론 오로지 높은 점수로 좋은 대학 가는 것만을 지상 목표로 삼다 보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그것만이 삶의 최대목표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어에 대한 진지한 의미를 알아라고 하는건 어쩌면 애당초 연목구어일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하나, 외계인도 알아 듣기 어려운 ‘은어’(隱語)들이 너무도 판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내용을 자신들끼리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압축시켜 사용한다. 거기에 언론마저 덩달아 놀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예,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의미의 ‘영끌’, ‘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보배’(보조 배터리),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옛 말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성세대들이 올바른 국어사용과 분명하고도 체계적인 교육정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행여,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부모와 자식 간 대화마저 은어와 비속어가 판을 친다면 이보다 더 비극적인 삶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세종대왕이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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