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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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8)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6.03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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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장소와 책상, 의자, 칠판, 분필, 지우개 등을 살 돈이 필요했다. 장소는 나와 친한 친구 영숙이 아빠를 찾아뵙고 말씀드려보기로 했다. 마침 영숙이네는 학교 앞 도로변에 3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1층이 살림집이었고, 2층은 서울양복점, 그리고 3층은 창고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다음날 영숙이 아버지를 만나 당돌하지만 내 계획을 말씀드렸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데, 3층을 쓰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어린 네가 그런 생각을 다 했니?”

영숙이 아버지는 내게 기특하다고 칭찬하시며 쾌히 허락해 주셨다.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이제 책상과 걸상, 칠판 살 돈을 마련하는 게 남은 숙제였다.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 돈으로 한 개라도 더 많은 책상, 걸상을 마련할 수 있을지 궁리 끝에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긴 판자로 책상을 만들고 의자 역시 긴 의자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별 책걸상보다 돈이 훨씬 적게 들고 더 많은 아이들이 앉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게 이루어진 것처럼 신이 나서 동네 제재소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주인아저씨에게 내가 원하는 책상과 걸상을 설명하고 맞추는 데 돈이 얼마가 드느냐고 물었다. 건물 3층 넓이를 보아 5명씩 4줄 정도 앉을 수 있는 공간이어서, 5명씩 앉을 수 있는 책걸상을 4조 맞출 생각이었다. 아저씨는 책걸상 1조에 1,500환, 4조를 맞추려면 6,000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칠판은 1,000환, 지우개, 분필 등 500환 등 필요한 돈은 총 7,500환이었다.

총액 계산이 나오자 나는 곧장 은행으로 쫓아갔다. 그러고는 은행 창구 앞에서 은행 언니에게 말했다.

“내가 돈이 꼭 필요해서 그런데요. 7500환만 빌려주세요. 나중에 틀림없이 갚을게요.”

그러자 은행 언니가 깔깔 웃어대며 말했다.

“얘야, 그런 돈은 동네 옆집에서 꾸어 쓰는 거지, 은행에서 빌리는 게 아니란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얘기해봐.”

은행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돈을 빌려주는 줄로만 믿었던 나로서는 하늘이 노래질 일이었다. 그래도 은행에서 꾸어줄 수 없냐고 재차 졸랐지만 소용없었다. 그 순간 맥이 빠졌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런데,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는 말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용국이 엄마한테 가서 용국이 공부를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7,500환을 미리 달라고 하자. 틀림없이 용국이 엄마는 좋아하며 빌려줄 거야.’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 한 수였다. 용국이네는 우리 동네에서 센베이 과자 공장을 하는 아주 부자로 소문난 집이었다. 용국이 어머니는 사실 오래전부터 나한테 용국이가 공부가 시원찮다며 과외를 해달라고 몇 번이나 우리 집을 찾아왔었다.

나는 부리나케 용국네 집으로 뛰어가 용국이 어머니를 만났다.

“아줌마, 용국이 공부를 가르쳐 줄 테니까 먼저 7,500환만 빌려주세요.”

그러자 용국 어머니는 되묻지도 않고 좋아하시며 당장 그 자리에서 7,500환을 꺼내 주셨다. 내가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쾌히 선금을 내준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남은 것은 학생 모집이었다. 학생을 20명까지 앉힐 수 있는데 한 달에 얼마를 받을까? 생각 끝에 500환 정도가 좋겠다고 그냥 정했다. 홍보는 5학년인 동생에게 내가 학원을 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리라고 했다. 그러자 바로 학부모들이 소문을 듣고 줄줄이 찾아와 아이들을 부탁하고 갔다.

그렇게 금방 모집인원 20명이 차서 늦게 오는 엄마들은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명 가득한 방에서 나는 한 학년 아래인 학생들의 선생님이 되어 산수, 국어, 자연 세 과목을 50분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재는 각 과목 교과서와 수련장 문제 풀이로 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6학년 때 선생님이 내게 맡겼던 산수 부장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이 안 계시면 산수 부장인 내가 나가서 수련장 문제를 칠판에 풀어가며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10,000환이라는 큰 목돈이 내 손에 들어왔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 과외를 해서 돈을 벌다니! 나는 돈을 받자 그길로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께 내밀었다.

“엄마, 이 돈으로 필요한 것 있으면 사세요.”

내가 건네는 돈을 받아든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물을 글썽이셨다.

“아니 네가 무슨 돈을 다 벌어다 주니?”

“엄마, 괜찮아. 선생 하니까 재밌어. 돈도 벌고. 그리고 나더러 잘 가르친대.”

어머니가 힘든 바느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 학원에 오는 아이들은 한 명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고, 오히려 들어올 수 없냐고 묻는 어머니들이 찾아올 정도였다.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중학교 입학하고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학교로 그 선생님을 찾아갔다.

“저를 부르셨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다. 잘 가르친다지? 그런데 그렇게 학원을 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불법이란다. 그러니 잘 생각해서 하도록 해라.”

그 순간 나는 기절할 뻔했다.

“불법이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불법이라는 말에 기가 질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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