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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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9)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6.10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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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라니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나도 학교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 더는 가르칠 수가 없게 되었다고 둘러댔다. 그래도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친 기간이 약 5개월이었다. 5개월간의 인기 꼬마 강사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때 나를 불러 불법이라고 말했던 선생님은 댁에서 학생 10명 과외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대부분 나한테로 오는 바람에 과외를 접었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나는 잠시라도 효도할 수 있었고, 12살 선생의 영광과 함께 학원을 운영한 남다른 성취경험도 최고였다.

글짓기 대회마다 휩쓴 글짓기 솜씨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교내 백일장이 있었다. 전교생이 참여한 이 대회에서 나는 1등상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전체 선생님과 전교생이 모인 조례에서 단상으로올라가 마이크 앞에서 내 글을 직접 발표하는 영광도 가졌다. 운동장에 있는 모든 사람 누구 할 것 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들었다.

「밤늦게까지 돌돌돌… 재봉틀은 굴러갑니다. 부은 다리로 그 위에 앉아계신 우리 어머니…」

내 글 속의 우리 어머니가 그때만큼은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가슴을 적셔 내렸다.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후 내 글짓기 능력을 인정한 키가 유난히도 컸던 국어 선생님은 외부에서 개최되는 글짓기 대회마다 참가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주셨다. ‘밀조주 방지 현상 작문대회’에서 대전사세청장상, ‘결핵 예방과 크리스마스씰 성금운동에 대한 학생작문대회’에서 입상, 결핵협회장상, ‘밀조주 방지 현상 작문대회’에서 대전세무서장상 등 거의 모든 글짓기 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그래서 그때는 글짓기가 쉽다고 생각했다. 주제에 따라 내 생각을 쓰기만 하면 입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했는지 모른다. 나가기만 하면 상을 받는 나를 보고 함께 가신 꺽다리 국어 선생님이 더 기뻐하셨다.

중·고등학교 때 테니스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돌샘문학동인회」라는 동인회 회원으로서 매주 토요일 선생님 댁에 모여 시 회람을 했다. 그 문학동인회는 남녀 고등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학생 2~3명씩이 각자 써온 시를 읽고 서로 비평하고, 문학 청소년들의 꿈을 나누는 문학모임이었다. 그때 회원 중 한 명이 최초로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하여 집대성하고, 명강의로 유명한 서울대 중문학과 허성도 교수이다.

나는 그 시절의 꿈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그런 꿈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처음 간호대학에 사표를 내고 쉬는 동안에도 불조심에 관한 주부수필 현상 모집에 응모할 용기를 내어 상장과 상금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학창시절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당선되는 기쁨도 컸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상장은 물론 상금이나 상품을 부상으로 받아서 어머니 앞에 내밀 때마다 볼 수 있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내게는 큰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고생하시는 어머니에게 유일한 낙은 우리 형제가 착하고 공부 잘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한 번이라도 더 어머니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모든 것을 잘 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자서전을 쓰게 된 잠재적인 동기도 그때 어린 시절 인정받았던 글솜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나 국가장학생으로 뽑혔어요!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고 중학교에 입학한 나에게 학교생활은 하루하루 즐거움 그 자체였다. 그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장실로 데려갔다 그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호가 이번 입학시험에서 충남 도내 최고의 성적으로 우리 학교의 명예를 높여줘서 너무 기쁘다. 그런데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 학교 명예를 빛내주면 좋겠다.”

그러면서 설명을 이어가셨다.

“얼마 후에 충청남도에 있는 모든 중학교 수석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장학생 시험을 본단다. 그중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남학생 한 명, 여학생 한 명에게 중학교 3년간 장학금을 주는 시험이다. 잘 준비해서 이번에도 다른 수석을 제치고 네가 뽑히면 좋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교장실을 나왔다. 다음 날은 내가 기다려왔던 테니스부원을 선발하는 날이었다. 나는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나는 꼭 테니스부에 들어서 반드시 테니스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운동장에는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나도 그 아이들 대열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박희태 체육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송지호가 여기에 무슨 일이냐?”

“테니스부원이 되고 싶어 왔는데요.”

“너는 안 돼. 너는 공부로 성공해야지, 무슨 운동선수야!”

더는 내 말을 듣지도 않겠다는 표정으로 일언지하에 단호하게 끊으셨다. 선생님의 표정을 보면서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꼭 테니스부에 들어가야 하는데요.”

간절한 표정으로 매달리는 나를 보더니 마지못해 “그럼 조건이 하나 있다. 네가 이번에 국가장학생 시험에서도 뽑히기만 한다면 내가 무조건 테니스부에 넣어주마.”

그 조건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테니스 선수가 된 것처럼 들떠 있었다.

드디어 시험날, 나는 선생님과 함께 시험장소로 갔다. 큰 교실에 학생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각 학교 수석합격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여기서 1등으로 내가 뽑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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