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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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계’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6.1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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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발행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쁜 여자를 이용하여 남자를 꾀는 방법”을 ‘미인계(美人計)’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남자로서는 도저히 목적을 이룰 수 없는 나머지 여자라는 이성(異性)을 이용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 이 같은 표현을 쓴다. 그만큼 예쁜 여자에게 남자는 약하다는 의미일게다.

때는 중국 춘추 말기, 월나라 저라산 근처에 사는 나뭇꾼 아버지에게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서시’.

그런데 그 딸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녀가 개울로 빨래를 하러 나가면 그곳에 있던 물고기들이 물에 비친 서시의 얼굴을 보고 헤엄칠 생각도 잊은 채 그대로 가라 앉아 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침어(侵漁)’이다.

그런가하면 서시가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는 모습조차도 아름다워 같은 마을에 사는 처녀들이 모조리 찡그린 모습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하니 참으로 예쁘긴 예뻤던 모양이다. 그래서 또 생겨난 고사성어가 ‘동시효빈(東施效嚬)’ ‘서시빈목(西施嚬目)’이라고 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번은 서시가 이웃 월나라로 뽑혀가게 되었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 모두가 서시의 얼굴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바람에 그녀가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데 사흘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때 월나라 재상이던 범려는 서시의 얼굴 보는 값으로 백성들에게 1전씩을 받아 그 돈으로 무기를 살 정도였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서시가 살던 당시 월나라는 이웃 주나라를 모시면서 각지의 제후국들이 서로 힘자랑을 하던 시대였다. 특히 월나라는 오나라와 매우 적대적 관계였다. 그야말로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이 나는 상황이었다. 결국 손무의 도움으로 부차는 월나라를 굴복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구천이 쓸개를 옆에 두고 그 쓸개맛을 보며 오나라에 당한 굴욕을 새겼다.

구천은 무너진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때 구천이 착안한 방법이 바로 ‘미인계’였다.

호색한 부차에게 택정받은 서시

이후 범려에게 발탁된 서시는 다양한 기예와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 정보 수집 방법 등을 교육받았다. 서시를 교육하는 동안 범려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지만 오나라에 대한 복수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서시를 오왕 부차에게 바쳤다. 호색한이던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후궁으로 삼았다. 오자서는 부차의 이 같은 처사에 반대하며 다시 한 번 월나라의 구천과 범려를 경계하고 월나라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간언했다. 그러나 부차는 오자서가 자신의 행동에 매번 반기를 들자 점차 그를 멀리했다.

결국 부차는 오자서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자결을 명령한다. 부차의 명령에 분노한 오자서는 스스로 눈을 파서 나뭇가지에 건 다음 죽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부차가 폐해 오나라가 망하는 꼴을 나뭇가지에 걸어둔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 보겠다고 했다.

오자서의 우려대로 오나라의 힘은 약해졌고 그 기회를 노린 월나라는 오나라를 쳐서 이겼다. 부차는 산 속으로 도망가 미인에게 속아 충신을 저버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그 역시 자결하고 만다.

하지만 정작 오나라를 망하게 만든 일등 공신 서시의 행방이 묘연하다. 일설에 의하면 서시는 오나라가 망하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자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도 하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원래부터 서시를 사랑했던 범려가 오나라가 망하자 서시를 구해내 그녀와 함께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고도 한다.

서시, 비록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의 미모를 지녔지만 그녀의 삶은 생각처럼 녹록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정치적 목적물로 이용 당했던 그녀가 주체적인 삶을 살기란 불가능했다. 

‘미’가 삶의 중심이 되면 곤란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미인들의 삶은 어떨까, 물론 대부분의 미인들은 자신만의 분명하고도 확고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상당 수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미를 무기삼아 무임승차를 하려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 미인의 삶이란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도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 못지 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 단순히 타고난 미만 의지한다면 분명 비참한 말로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세상이란 모름지기 아름다운 것은 취하고 싶고, 취한 후에는 반드시 버려짐을 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가 삶의 중심이 되어선 곤란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못 넘긴다(花無十日紅)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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