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고 작은 호흡과 숨 쉬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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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고 작은 호흡과 숨 쉬는 자유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1.06.17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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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두 달쯤 전에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재판이 재개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지 플로이드를 죽음에 이르게 한 미니애폴리스의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한 재판이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 데릭 쇼빈을 비롯한 경찰관들이 위조지폐를 사용한 용의자로 당시 47세인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면서 무릎으로 가슴과 목을 눌러 숨지게 한 사건이다.

이때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지속적으로 호소했지만 이를 묵살하고 수 분 동안 플로이드의 가슴과 목을 압박,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흑인 소녀 다넬라 프레이저(18)가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소셜미디어에 올림으로써 미국 전역에서 항의시위가 일어난 계기가 되었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구호로 내건 이 인종차별 반대시위는 수개월 간 지속되면서 폭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체포과정을 찍은 다넬라 프레이저의 영상은 이후에 경찰관 데릭 쇼빈을 비롯한 경찰관들이 유죄평결을 받도록 하는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었고 그녀는 최근에 2021년 플리처상 특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필자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피의자인 데릭 쇼빈에 대한 재판이 CNN을 통해 생중계되는 것을 봤다. 이 재판과정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조지 플로이드를 직접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에 대한 전문가의 증언이었다. 당시 플로이드의 사망원인에 대해서 지병인 심장질환과 고혈압이 함께 작용했는지, 아니면 경찰의 폭력적인 체포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인지에 따라서 과실치사나 살인혐의의 적용 여부가 결정되므로 언론의 큰 관심이 쏠린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선 세계적인 호흡기내과학자인 마틴 토빈 박사의 증언은 경찰관의 폭력적 체포행위가 직접적인 사망원인임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필자는 방송 내내 그 증언의 디테일과 설득력에 감탄하였는데 결국 이 증언은 배심원에 의해 살인혐의가 인정되고 검찰이 징역 30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하게 된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그의 증언에서 플로이드의 사망원인은 한 마디로 ‘얕고 작은 호흡’이라는 것이다. ‘얕고 작은 호흡’이란 매우 가쁘게 숨 쉬면서 한 번에 매우 소량의 공기만을 마시고 뱉는 형태의 호흡을 뜻한다. 이런 형태의 숨쉬기로는 폐 안까지 공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폐 안에서 이루어지는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작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혈액 중의 산소농도가 떨어지고 이것이 특별한 형태의 부정맥과 뇌 손상을 일으켜서 사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지 플로이드는 두 손이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엎드려진 상태였다. 이때 경찰관들은 수갑이 채워진 손을 밀어 올리고 무릎으로는 체중을 실어서 플로이드의 가슴과 허리 그리고 목을 누르고 있었다. 이는 플로이드의 몸통이 경찰관의 무릎과 딱딱한 도로 사이에 눌린 상태로 폐가 팽창하여 공기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플로이드의 마지막 모습은 오른쪽 어깨를 들어 올려서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는 몸짓이었다.

이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껏 누리는 숨 쉬는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우리도 ‘얕고 작은 호흡’을 하면서 숨 쉬는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고 있지 않을까? 어떤 경우에 ‘얕고 작은 호흡’을 하게 될까? 사실 우리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그렇게 호흡하며 지낸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소파 위에 비스듬히 몸을 눕히고 TV를 시청하고 있을 때, 그리고 바닥에 앉아 있을 때 등이다.

이러한 자세에서는 횡격막(가로막)과 늑간근의 움직임이 제한되고 이로 인해 폐가 순조롭게 팽창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같은 양의 공기를 들여 마셔도 충분한 양의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놀랍게도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통증의 근본 원인이 잘못된 자세와 그로 인한 호흡이라는 증거가 밝혀지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는 ‘얕고 작은 호흡’을 강요당하였지만, 어쩌면 우리는 ‘얕고 작은 호흡’을 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서서히 죽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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