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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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의 수단
  • 최성웅 민족중흥 옥천동우회장
  • 승인 2016.07.1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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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권정(權政). 판소리 명창 권삼득(權三得)은 조선시대 영조47년 (1771년)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 사는 안동 권씨 양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별명으로 권삼보, 권선달, 권생원, 권사인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권삼득은 판소리 8대 명창 중 한명으로 꼽힌다.

재상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권삼득은 어려서부터 글공부에는 게으르고 창극조 부르기에만 신명이 났다. 

전주의 하한담 선생과 당시의 명창이었던 최선달 등으로부터 판소리를 전수받았으며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황홀하게 했다고 한다. 성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온 고을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건 귀머거리들뿐, 그가 나타났다 하면 시장바닥이 텅텅 비었고, 애를 낳던 여자도 튀어나올 판이었다.

‘명창 권삼득’ 그 이름은 산을 넘고 골을 누볐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골칫거리였다. 소위 양반 가문에 명광대가 나타나다니···

양반 집안에서의 광대 노릇은 용납되지 않아 집안에서는 그를 멍석말이로 죽이려 하였다. 결국 그의 천부적인 목소리로 소리한 대목을 늘려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결국 집에서 축출되고 만다.

어느날··· 숙의 끝에 문중회의를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회의 끝에 그의생명을 끊고 가문의 이름을 보존키로결정했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앓아서 눕고, 고을 안팎에선 동정의 소리가 소용돌이 쳤다. 그러다 드디어 집행하는 날이 되었다. 삼득은 뭇사람들 앞에서 마침내 거적에 덮씌웠고 옆에는 커다란 왕작두가 준비되었다. 어머니는 지혜를 짰다.

기왕에 죽는 아들이니 마지막 소원하나 들어주고 죽이자고. 그렇게 허락되고 사연을 물은 즉, 권삼득은 “마지막 가는 길잉께 노래나 한자리 하고 갈라요” 드디어 거적 밑에서 들려오는 피맺힌 가락, 거적 아닌 땅 속 저 멀리저승에서 울려오는 애절한 가락.

마지막 유언의 명창 앞에 눈물짓는 가족과 관중들… 관중들의 하소연에 겨운 가문들은 다시 회의를 열어 번안. ‘작두사형’을 보류하는 대신 족보에서 그를 제명키로 하고 추방명령을 내렸다. 저승의 현관에서 돌아온 삼득은 멋들어진 고운 가락으로 강산을 누비며 명창광대로 살다가 이승을 떠났다.

현재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는 그의 묘와 함께 ‘소리구멍’이라 불리는 조그마한 구멍의 소리굴이 있는데, 비가 오는 밤이면 노랫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는 전설이 있다. 이 소리굴은 오늘날 까지도 소리를 하는 후생들의 그의 소리를 들으려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양반출신으로 사회적 차별을 뒤로한 채 소리를 선택한 명창 권삼득은 1841년 70세의 나이에 타계했으며,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전라북도 도립국악원 안마당에는 ‘국창 권삼득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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