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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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25)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7.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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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원구곡가(栗原九曲歌) ‘제1곡’

조헌 선생이 41세 되던 해 정월에 율곡 선생이 세상을 뜨시자 당쟁은 더욱 격화되고 이에 연좌되어 보은 현감에서 물러난 그는 옥천 안읍 도래밤티 산중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에 들어와 공주제독(公州提督)에 제수되기 전까지 1년 동안은 새로운 삶에 충실하며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금강이 흐르는 옥천은 산천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명소를 찾아 주유하며 선비들과 시를 짓고 강학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율원 구곡가(栗原九曲歌)는 이때 남긴 작품 중의 하나이다.

율원(栗原)은 본래 황해도 배천 치악산 아래 선조들이 은거하던 곳인데 여기서는 그가 사는 안읍 율티(栗峙) 산중의 계곡 일대를 일컫는 것이다. 율원 구곡가((栗原九曲歌)는 옥천의 금천계곡으로부터 서화천에 이르는 60리의 절경을 담았다. 이 시는 조헌의 문집인 중봉집(重峰集)에 들어 있으며 제목이 유율원차무이도가운(遊栗原次武夷棹歌韻)으로 율원에서 노닐며 무이도가에서 차운하였다는 의미이다.

남송의 주자(朱子)가 복건(福建) 숭안현(崇安縣) 남쪽 무이산(武夷山)에 은거하면서 아홉 구비 계곡을 노래한 10수의 시를 짓는다. 퇴계, 율곡 등 조선의 도학자들은 주자의 시에 화답하거나 차운하고 자기가 강학하거나 살던 곳을 무이구곡에 모방하곤 했다.

율원구곡가 역시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悼歌)에서 차운한 것으로 강호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뜻은 도학의 성취 단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율원 구곡가는 모두 10수로 구성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서시(序詩)로부터 시작되는데 본래 소제목들이 별도로 붙여진 것은 아니었다.

서시(序詩)
天成老嶽閟精靈 하늘이 만든 노성산에 만물이 그윽하니
嶽下泉流步步淸  산 아래 샘물 흘러 걸음마다 맑구나
行到栗原奇勝處 그 물이 율원에 이르러 빼어난 경치를 이루니
武夷須續棹歌聲 모름지기 무이((武夷) 의 뱃노래 이어 보리라

노악산은 지금의 보은 회남과 회북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老城山)이다. 이 끝자락에 조헌이 거처하는 도래밤티가 있었다. 지금도 그곳의 그가 판 우물에서는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다.

그는 ‘율원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곳에 도달하니 무이도가(武夷悼歌)의 노 젓는 소리가 이어진다’고 읊었다. 중봉은 무이구곡(武夷九曲)과 같은 승경지에 율원구곡을 설정하고 시(詩)를 써서 주자(朱子)와 같은 생활을 실현하려고 한 것이다. 서시에서 이러한 점을 표명했다.

제1곡 창강(滄江)
一曲滄江有小船 일곡이라 창강에 작은 배 떠 있는데
發源南嶽作長川 남쪽 산에서 발원하여 긴 강을 이루었네
西歸錦麓因歸海 서쪽으로 금록(錦麓)을 돌아 바다로 흘러들어
碧浪應通洙泗烟 푸른 물결 응당 안개 낀 수사(洙泗)로 통하네

제1곡 창강(滄江)은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일대의 계곡이다. 남쪽 산에서 발원하여 내를 이루었다. 서대산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금천으로 흘러들었고 여기저기에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으며 금강으로 들어간 물은 서쪽 바다로 합류한다. 그곳에서 공자가 나시고 제자를 가르쳤다는 중국 산동 곡부를 흐르는 강 수사(洙泗)에 이른다고 했다. 수사는 수수(洙水)와 사수(泗水)가 합쳐진 강이다. 창강의 물길이 바다로 흘러들고 그 물은 결국 사수의 물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는 공자의 학문을 일컫는 것으로 조헌은 자신의 학문이 공자의 유학을 계승했다는 뜻을 담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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