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꿈이 맑고 밝은 희망의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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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꿈이 맑고 밝은 희망의 옥천
  • 이돈주 한국문인협회 서정문학연구위원
  • 승인 2021.07.01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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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은 살기 좋은 고장이다. 동부는 소백산맥의 지맥이 뻗어 마니봉, 월리봉, 대성산 등이 중첩되어 있고 금강 상류가 해맑게 북서류한다. 따라서 풍광이 명미한 청풍명월의 고장이며 명승고적이 많은 역사의 고향이다.

경부고속도로와 철도가 군내를 관통하는 국가 요충지로 대전과 인접한 근교 농업과 공업단지로서 미래 무한 발전이 기대되는 위성도시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특히 남한의 중앙점에 위치하여 앞으로 옥천군을 중심으로 세계화에 앞장설 수 있는 비전있는 발전상이 기대되는 지역이다.

넓혀 말해보면 충청북도는 우리나라의 남부에 있는 유일한 내륙지방이다. 동쪽으로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서쪽은 충청남도‧대전광역시, 남쪽은 전라북도, 북쪽은 강원도·경기도와 접하고 있다.

동남부는 소백산맥이 그리고 북서부로는 차령산맥이 가로놓여 인접한 광역 시‧도와 자연적인 경계를 형성한다. 면적은 7435.62㎢로 남한 면적의 7.5%를 차지하며 제주도 다음으로 작은 도이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을 둘러싸고 삼국 간에 무수하게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중요 지역이다.

역사로 보면 통일신라 때인 경덕왕 16년(757)에 중원경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성종 14년(995)에 중원도라 하였다가 예종 원년(1106)에는 다시 관내도(양주‧광주)와 하남도(공주‧운주)를 병합하여 양광충청도라 하였다. 명종 원년(1171)에 다시 2개 도로 나누었다가 충숙왕 2년(1315)에는 다시 합하여 양광도로 그리고 공민왕 5년(1356)에 충청도라 하였다. 조선조에는 태조 4년(1395)에 충주에 관찰사를 두어 도를 관할하게 하였고 선조 31년(1598)에는 감영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지기도 했다.

또한, 행정의 편의상 충청도가 좌도와 우도로 나뉜 적도 있으나 관찰사는 여전히 한 사람으로 임명되었다. 1896년 전국 8도를 13도로 개편 시 충청좌도가 충청북도로 그리고 충청우도가 충청남도로 되어 충청도의 양분이 이루어졌다. 1908년에는 도청이 청주로 옮겨졌다.

이후 최근까지 인접한 지역들의 통폐합 등 관할에 있어 숱한 변화를 거쳐 왔다. 충청북도는 예로부터 하나의 중원문화권을 형성할 조건을 갖추어 이 지역 주민들에 대한 문화적 정체성과 전통성을 지니게 하였다. 지리적으로도 산지가 많아서 대부분의 마을들은 산간분지의 경지를 따라 배산임수에 위치한 집촌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옥천군은 1개 읍과 8개 면(군북·군서·동이·안남·안내·이원·청산·청성)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충청북도의 남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경상북도 상주시, 서쪽은 대전광역시, 남쪽은 영동군과 충남 금산군 그리고 동북쪽은 보은군과 접하고 있다. 총면적은 534.80㎢로 군 소재지는 옥천읍 삼양리에 있다. 옥천읍을 중심으로 한 산간분지 외에는 옥천군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충간 지대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팔음산(762m) 천금산(465m), 서쪽에는 환산(581m), 마성산(497m), 남쪽에는 월이산(551m) 그리고 북쪽에는 금적산(652m) 등이 솟아 있어 군의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보은군에서 발원하는 보청천이 남서쪽으로 흘러 군의 중앙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자연환경이 산명수려하고 적절한 곳으로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를 이루어 양국이 교대로 점령하던 격전지였다. 이런 점은 관산성을 비롯한 삼국시대의 여러 성터가 지금의 옥천읍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점에서 그 군사적, 교통적인 요충지역 중요성을 말해 준다.

옥천은 통일신라의 군‧현명 개칭을 거쳐 고려 초에는 상주에 속하였다가 충선왕 5년(1313)에 지옥주사(知沃州事)로 승격되어 이웃한 경산부(지금의 성주)의 관할인 이산현‧안읍현‧양산현 등 3현을 분속 받은 일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종 13년(1413)에 옥천군으로 개칭되어 청산 현과 함께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현 통합을 거친 뒤 1949년 옥천면이 현재의 옥천읍으로 승격되었다.《대동지지》에 의하면 옥천 읍내 장이 2일과 7일에 열린다고 나와 있다. 지금은 5일과 10일에 각각 5일장이 열린다.

오랜 역사와 문화가 살아 빛나고 현재 발전과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며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는 옥천, 속속들이 깊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정겨운 청정의 고장, 정과 꿈이 맑은 옥천이다. 코로나 19 범유행 시대, 마음 가다듬고 기쁘게 찾아 두루 보며 휴식할 수 있는 알맞고 좋은 고장이 분명하다.  
 
<참고문헌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 1917. 조선 경성부 공평동 중앙시장판, 국립민속박물관 학술총서 15 충북지방 장승‧솟대 신앙, 1994. 국립민속박물관, 기타 인터넷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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