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바우와 독락정(獨樂亭)
상태바
배바우와 독락정(獨樂亭)
  • 강형일기자
  • 승인 2021.07.08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남면 연주리
독락정 전경
독락정 전경

안남면사무소가 있는 연주리, 왼쪽으로 가면 독락정이 있으며 오른쪽으로 탁 트인 공원과 아담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1.6km 남짓 떨어진 서당골, 덕실마을에는 유서 깊은 ‘덕양서당’이 있고 둔주봉을 비롯한 여러 명소가 있는 곳이다. 약 2년여 년 전부터 지역민들의 활발한 사회적 활동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어서 ‘배바우 청정마을’이라고 부르며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행사를 여는 등 새롭게 떠오르는 청정지역이다.

안남면 연주리(蓮舟里)를 ‘배바우’ 또는 주암이라 한다. 이는 도덕리 덕실마을에서 흐르는 냇가에 마치 배(舟)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옛날부터 이 배바우는 물속에 잠기게 될 것이며 그 앞의 넓은 들은 호수가 되어 배를 띄우게 되고 인포리에는 포구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 수백 년 간 이런 전설이 끈질기게 전해 왔지만 그것이 실현되리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기묘한 일이 생겼다. 즉, 대청댐이 착공되고 담수가 시작됐는데 공교롭게도 수몰선(水沒線)이 배바위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배바위가 물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고 물 위에 뜨는 형국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옛말 그른 게 없다. 신기하게도 맞는다"라고 한다. 행정구역의 명칭도 그전에는 주암이었는데 근래에 연주리로 고쳐 부르고 있으며 인포리는 말 그대로 포구처럼 되었다.

1987년 홍수 피해 후 현재 위치로 이전된 ‘배바우’ 연주1리 전체 가구 수 110호. 그 중 점말에 거주하는 가구는 단 3가구. 따라서 연주1리 2개의 자연마을 중 배바우는 연주1리의 중심마을이면서 안남면 전체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지난 1987년 배바우 주민들은 대청호의 물이 면 소재지로 역류하며 홍수 피해의 무서움을 경험한 바 있어 지금도 많은 비가 내리면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당시 홍수로 인해 현재 면사무소 앞 잔디밭에 있던 28가구는 수자원 공사로부터 보상을 받아 위쪽으로 이동, 새로운 소재지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면사무소 소재지이면서도 이곳은 번잡하지 않은 쾌적한 공간이 널찍하게 마련돼있다. ‘아는 사람 빵집 부엌’ 앞에서는 작은 전시회도 연이어 이어지고 있다. 독락정(獨樂亭)은 서기 1607년 조선 선조 40년 절충장군 중추부사(折衝將軍 中樞府事)를 지낸 주몽득(周夢得)이 건립한 정자로 후에 글을 가르치는 서당으로도 사용되었다. 1772년 중수한 이래 수차례의 보수가 있었으며 이 정자가 있는 마을의 이름도 독락정이라 부르고 있다. 작은 마을을 지나 강이 바라다보이는 벼랑 가까이 다가가면 언덕 위 예사롭지 않은 곳에 단출하게 서 있다. 글 꽤나 한다는 선비들과 묵객들이 닳도록 드나들었을 마루는 여러 번의 개축에도 반들반들 세월을 증명하고 세월이 금강과 함께 흘러 주위 풍광 또한 많이 변했겠으나 그들이 누렸을 풍취 한가락쯤은 엿볼 수 있다.

배바우 상징 조형물 ‘두리둥실 배바우’
배바우 상징 조형물 ‘두리둥실 배바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