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블로그] 싸전(廛)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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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블로그] 싸전(廛)의 기억
  • 강형일기자
  • 승인 2021.07.22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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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의 어느 쌀집
이원면의 어느 쌀집

미곡상, 쌀가게, 쌀집.

싸전, 사전적 의미로 쌀과 그 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를 뜻하며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우리들은 쌀집을 이렇게 불렀다. 너나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흰 쌀밥 한번 배부르게 먹지 못하던 가난한 시절(그래 봐야 기껏 30~40년 전의 풍경), 적어도 배는 곯지 않았을 쌀집에는 늘 멍석 그득 담긴 쌀과 갖가지 잡곡이 넘쳐났다. 그리고 실제로 동네에서 몇째 안가는 부자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유통구조가 복잡하진 않았지만 주식인 쌀과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온갖 곡식들을 취급하는 곳 아닌가.

물론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식생활의 변화는 말할 것 없을 뿐더러 이제 구태여 쌀집을 찾지 않아도 아주 쉽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배달 자전거도 옛말)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싸전에 가서 밥 달라 한다’라는 속담과 풍요로움의 상징인 쌀집 곁에서 배운 척한다고 궁핍하고 낮은 신분의 처지가 달라지겠느냐는 뜻을 지닌 ‘싸전 지붕 밑에서 풍월 읊어본다고 통영갓 쓰겄소’라는 지금으로서는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속담도 있다.

그러나 낮은 지붕 아래 주인의 인심에 따라 됫박이 달라지는 예전의 싸전, 작은 뒤주만 한 돈 통에 광 자물통같이 큼지막한 자물쇠를 걸어 놓고 위쪽에 뚫어놓은 구멍으로 곡식 판 돈을 쉼없이 집어넣던 광경은 옛이야기가 됐다. 어쩌다 크게 모습이 변하지 않은 시골의 옛 번화가, 또는 주택 밀집 지역이었던 도심의 뒷길을 걷다 보면 예전의 영화를 위안 삼아 묵은 쌀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쌀집 주인장의 허전한 눈길을 마주치기도 하고 모든 것이 대형화, 현대화된 세련된 매장들과 달리 옹색하지만 정겨움이 남아있는 ‘싸전’의 여닫이문 앞에서 잠시 망연히 서 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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