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에서 조령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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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에서 조령산까지
  • 조성순 수필가
  • 승인 2021.07.2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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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이 있는 속리산

김천의 황악산에서 고사를 지내고 바람재를 넘을 때는 겨울이었고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인 괘방령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금강을 따라, 철길을따라, 추풍령으로 백학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신의터재에 이르자 들판엔 초록빛이 돌기 시작했다. 

눈 속에서도 청청한 소나무가 점점 많아지는것을 보니 속리산에 접어든 것이 확실하다. 속리산에는 바위가 많다. 바위는 소나무 짝이다. 이들은 서로 살을 섞어 한 몸처럼 지낸다. 속리산 줄기엔 많은 기암괴석으로 악휘봉과 대야산 곳곳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지만 백두대간 위험 베스트 9에 속해있는 구간이다. 산행 들머리는 피앗재로 ‘비밀의 화원’ 같은 만수리 계곡을 지난다. 아침 햇살은 안개 속에서 초록의 신비함을 찾아낸다. 비밀의 문을 통과해 산행 들머리에 이를 테지만 마음은 오랫동안 이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숲에서 발을 떼는게 아쉬운 시간이다.

피앗재에서 천왕봉까지는 서서히 높아진다. 전망바위에서 아직 안개 속에 있는 기묘한 석봉들과 소금강산이라 이름 붙여진 속리산을 본다. 햇살아래 온전히 모습을 나타낼 때와는 다르게 신비함을 느끼는 것도 좋다. 어떤 바위 뒤, 어떤 봉우리에서 산신령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영험한 분위기다. 

전망바위에서 천왕봉까지 가파른 길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몸이 지치는 만큼 마음은 맑아진다. 천왕봉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동안 지나는 입석대, 경업대, 신선대 등의 바위들은 넓은 가슴으로 부드럽다. 안개를 걷어 낸 모습은 둥글둥글하여 세상살이에 지친 어깨를 다독여주는 인자한 아버지의 품, 어머니의 가슴 같아 넘어져도 부딪혀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문장대 아래 바위에서 비빔밥을 먹는다. 햇볕을 가득 안은 바위는 군불 땐 온돌처럼 따뜻하다. 남 실장의 예의 양푼이 등장했다. 배낭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걱정했다더니 각종 나물에 참기름까지넣은 양푼 비빔밥에 문장대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매미만 한 파리도 거들고 나선다. 이제부터는 암행에 나서야 한다. 문장대보다 높이 솟은 도깨비 뿔 같은 통신 중계탑을 뒤로하고 백두대간 길로 숨어(?)든다. 

길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치가 있을 리 없다. 두어 시간은 좁은 바위틈새를 지나거나 코방아 찧을 듯한 길을 톺아 올라야 한다. 바위 사이를 빠져 나갈 때는 배낭을 내려놔야 했고 높은 바위를 올라 지날 때는 스틱이 오히려 짐이 되기도 했다. 팔도 다리가 되어 기어가거나 밧줄에 매달려 흔들거렸다. 위험한 암릉 구간이 끝나고 숨 고르기를 하다 보니 도로가 보인다.
또 하루, 도둑고양이 걸음을 했던 희양산도 생각난다. 저 유명한 봉암사결사가 있었던 희양산은 근접할 수 없다. 부처님 오신 날 하루를 제외하고 일 년 내내 스님들이 지키고 있어 백두대간을 이어가는데 커다란 걸림돌이되는 곳이며 스님들은 정진하는데 대간꾼들이 걸림돌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 안목이 달라지는 곳이라고나 할까. 속리산은 내게 있어 각별한 산이다. 엄마를 따라갔던 법주사의 은진미륵은 하늘에 닿아 있었고 나뭇가지를 번쩍 들어 세조의 행차를 순조롭게 하여 벼슬을 받았다는 정이품송이 경이롭던 어린 오 남매가 있고 문장대의 가파른 나무계단을 힘겹게 오르던 나이 드신 아버지의 기억들이 곳곳에 풀풀 날리고 있으니….

문경새재의 조령산

등산복을 입으면 즐겁다, 옷을 입는 순간 마음은 벌써 산에 들어있는 것인지. 차림새를 보면 다들 묻는다. 오늘은 어느 산에 가느냐고? 어느 산?글쎄, 백두대간에서는 꼭 어떤 산을 목적지로 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답이 궁색할 수 밖에 없다.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발자국을 이어가는 것이기에.

하루에 두서너 군데 산을 오르내리기가 일쑤이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이름의 산이 아닌 탓이다. 조령산 구간에 들었을 때는 여름 휴가철이었다. 휴가 일정도 대간에 맞춰있었다. 이화령 휴게소에서 강원도로 휴가를 갔던 술과 사람 좋아하는 엉뚱 개그맨 진이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이디가 ‘몽산’인 진이는 사진을 담당한다. 한겨울엔 카메라도 얼고 손도 얼곤 했다. 

몽산은 “답~답 하구먼”이 유행어다. 우리는 같은 상가에서 사진관과 문구점을 한다. 아침이면 커피 한잔하면서 어제 산행코스에 대한 도움을 얻어 산행기를 쓰곤 한다. 아무 산악회나 들어서 쉽게 갈 수 있는 산행이 아니라 함께 정해진 코스를 이어가야 하므로 집안 대소사와 겹치지 않기를 바랐다.

버드나무 아래 다소곳한 조령샘에서 목을 축이며 시작된 산행은 흙을 밟는 시간보다 화강암 위를 걷는 시간이 더 많았다. 조령 3관문의 약수와 넓은 잔디밭이 시원했던 하루가 있었고, 삼복더위를 핑계로 야유회를 겸한 문경새재 계곡에서 백숙을 해 먹으며 휴가를 대신했던 하루는 비교적 멀지않은 거리와 무더위에 짧게 잡은 코스 덕이었다. 여름에는 대간 타는 것을 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탄항산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라는 하늘재로 이어진 우중 산행까지 감행했다. 깊은 밤, 계곡 물소리에 홀려 세 시간이나 알바(대간길이 아닌 길)를 했던 포암산에 이르자 가을의 문턱에 와 있었다. 9월의 밤공기는 상쾌하고 향긋하다. 속리산에서 시작된 소나무와 바위의 조화는 여기 황장산까지 계속됐다. 차갓재에는 남한의 중간지점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일 년이 아무 사고 없이 지났다. 해발 850의 저수령에서 하루를 접는다. 저수(底首)령이란, 험난한 산길 속으로 난 오솔길이 워낙 가팔라서 길손들의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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