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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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정치학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7.2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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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을 한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강대국이 된 것도 아니며 뿌리없이 성장한 것도 아니다. 바로 그러한 바탕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대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중국 전국 시대 순자(荀子, BC 298? ~ BC 238?)가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 그저 기원전 298년쯤에 태어나 238년쯤에 사망했을 것이라는 정도의 추측만 할 뿐이다. 

순자, 그는 조(趙)나라의 사상가로써 이름은 황(況)이며 평생 예의를 가치 기준으로 삼았다. 

특히, 그는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를 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인 예비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도 중요하지만 이미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역시 늘 자신의 언행에 대해 매사에 주의를 기울이고 한 점 흐트러짐이 없도록 채찍질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상대방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비법을 소개했다. 여기서 싸움이라는 것은 실제 무기를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전쟁도 있지만 그와 맞먹는 정치판에서의 전쟁도 분명한 싸움임을 시사했다.

백성의 마음을 사로 잡아라

우선 순자는 “진정으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이다. 전략의 핵심은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있다”고 했다. 명언 중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전술에 강하고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군주라 해도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서는 백전백패나 다름없다. 전쟁에 나가는 군사들의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는데 무슨 도리로 승리할 수 있겠으며 병사들의 마음이 이미 잿밥에 있는데 무슨 염불을 외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순자는 “덕으로 다스리면 훌륭한 군주가 되고 무력으로 다스리면 나라가 약해지며 경제력으로 다스리면 나라가 빈곤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작금의 정치판을 보면 이러한 순자의 말이 전혀 먹혀 들지 않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다. 특히 공직사회가 심하다. 자신의 능력이나 인간됨됨이는 전혀 모른 채 그저 주위에서 추켜 세워주고 마음에도 없는 박수를 쳐주니까 진짜 자신이 출중한 실력과 인간미를 겸비한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 보니 싫어도 좋은 척, 틀려도 맞은 척 응해 줄 뿐인데도 말이다.

분명 주민들이 틀렸다고, 잘못됐다고 귀가 따갑도록 얘기를 하고 있으나 정작 인사권자는 말없는 벙어리다. 아니다. 애써 모른 채 넘어가려고만 한다.

그래서 순자는 또 강조했다. 군주는 모름지기 명령이나 포고를 할 때는 권위있고 엄격하게 발표를 하고 그러한 발표 뒤에 나타나는 행위에 대한 상벌은 신념을 갖고 공평하게 시행하라고.

뭐가 두려워 좌고우면하는가

멀리 볼 것도 없다. 지금 옥천이 그렇다. 합법적으로 4년이라는 기간을 5만 군민의 수장이자 700명에 달하는 공직자들의 인사권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좌고우면(左顧右眄)만 하고 있다. 도대체 분명한 컬러를 찾아볼 수 없다. 인사를 하는데 뭐가 그리도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그래서 군민들은 신뢰를 보내지 못한다. 딱 부러지는 맛이 없으니 무슨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만 증폭되고 있다. 

그에 더해 인사권자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권면을 하고 주의를 줘야 할 의회마저도 꿀먹은 벙어리니 말을 하면 할수록 입만 아프다. 그래 놓고도 이들은 내가 누굽네 하고 대우받기에만 심취해 있다.

구멍가게를 하는 주인도 자신의 종업원이 일을 잘못 처리해 손해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게 정상적인 경영방법이다. 하물며 5만 군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대신 일 좀 해 달라고 자리에 앉혀준 공무원이 잘못을 했다면 이는 더 엄격하고 준엄한 잣대를 들이대는게 맞는 이치다. 공직사회는 구멍가게 수준의 집단이 아니다. 이러다간 700여 모든 공무원들이 인사권자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우리는 원한다. 지도자가 말로만 지도자일게 아니라 어느 군민이 무엇을 원하고 어느 군민이 어디가 아픈지 속속들이 꿰뚫고 있어야 함을. 

비록 투표라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뽑힌 사람일지언정 군민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눈물을 닦아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군민들은 단호히 거부한다. 지금 옥천군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은 군민들의 마음을 조금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자기 잘난 맛에 흠뻑 취해 있다. 

내년 6월 1일,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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