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악성, 국악의 천재 ‘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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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악성, 국악의 천재 ‘박연’
  • 김동진기자
  • 승인 2021.08.05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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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난계국악축제에서 국악을 연주하는 장면
영동난계국악축제에서 국악을 연주하는 장면

바위 틈의 난초처럼 피어오른 난계

충북 영동 하늘에 국악의 선율이 가을바람을 타고 흐른다.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는 천재적인 음악가이자 음악이론가인 난계 박연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영동에서 매년 10월이면 그를 숭모하는 ‘영동난계국악축제’가 열린다. 

난계 박연(1378년~1458년)은 고려 우왕 4년인 1378년 8월 20일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난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천재적인 음악가이자 음악이론가이다. 본관은 경상남도 밀양이고 초명은 연, 자는 탄부이며 호는 난계, 시호는 문헌공으로 1767년 영조 3년 7월에 내려졌고 복야공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호가 난계가 된 유래는 바위틈에서 피어난 고고한 난초의 자태에 매료되어 자신의 호를 난계(蘭溪)라 칭했다고 한다.

단종 복위 화를 면하다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맏아들 밀성대군을 시조로 하는 밀양 박씨로서 아버지 천석(天錫)은 이조판서를 지냈다. 어머니는 경주 김씨로 통례문부사 김오(金珸)의 딸이었으며 부인은 정경부인 여산 송씨(礪山 宋氏)로 판서를 지낸 송빈(宋贇)의 딸이었다. 자녀는 3남 4녀를 두었는데 막내 아들 계우(季愚)는 박팽년 등 사육신들의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했다. 막내 아들의 행적으로 말미암아 그도 화를 입을뻔 했으나 세 임금에 걸쳐서 봉직한 공으로 연좌의 화를 면했다. 영동향교에서 수학한 후 1405년(태종 5)에 생원, 1411년 진사에 등과, 그 뒤 집현전교리,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세자시강원문학, 봉상판관 겸 악학별좌, 관습도감사, 공조참의, 중추원사, 보문각제조,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했다. 

성군과 음악 천재의 만남으로 궁정 음악 대성

세종을 도와서 음악을 정비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특히, 불완전한 악기 조율의 정리와 악보편찬의 필요성을 상소해 자작한 12율관(律管)에 의거 음률의 정확성을 기헀다. 그 상소문 39편이 난계유고(蘭溪遺藁)에 실려 있다. 

세종 때에 음악이 정비되었던 이유는 위로 임금의 뜻이 확고하고 아래로는 박연같이 악리에 밝은 사람이 있었으며 더욱이 해주에서는 거서가 나고 남양에서는 경돌이 나는 등 시운이 들어맞았다고 표현하는 글들이 있듯이 그의 음악적 공헌은 시대 상황과도 적지 않게 연결됨을 알 수 있다.  

난계 박연 숭모하는 ‘영동난계국악축제’

그를 숭모하는 행사로 ‘영동난계국악축제’가 1965년에 시작하여 매년 열리고 있다. 그의 고향인 영동군에서 개최되며 한국 전통의 다양한 음악들을 선보이는 예술제다. 이 축제는 2016년 지역 대표 공연예술제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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