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미래(欲知未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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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미래(欲知未來)
  • 김기순 수필가
  • 승인 2021.08.12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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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것이 인간이라 했던가.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어딘가에 의존하고 무엇인가를 붙잡고 기대고 싶어 한다. 뿐만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궁금해한다. 하느님 혹은 부처님께 기도하는 행위, 무당을 찾고 풍수지리를 논하는 등 이 모든 것이 의존성 강한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는 예일 것이다. 

오랜만에 보문산을 찾았다가 보문산 입구에 나열되어있는 ‘00보살’이니 ‘XX보살’이니 하는 점집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몇 년 사이에 어쩜 그렇게 많이도 생겼는지. 세월이 하 수상할수록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요즘은 옛날과 다르게 TV나 평생교육원 등에 무당이나 역술인들이 공공연하게 출연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말하는 귀신을 부르고 앞날을 예언하고 액운을 막아주는 등의 주술이나 굿이 신빙성이 있는지, 검증은 된 건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유명배우가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어 신방을 차려놓고 점을 보고 있었다. 그 배우의 말처럼 진정 인간의 존엄을 일깨워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인(仁)과 자(慈)가 기본이 되어있는 무당이라면 하소연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점집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삶도 시련없이 평탄한 길만 놓여 있지는 않다. 때론 예기치 못했던 절벽을 만나기도 하고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 허덕이기도 한다. 대부분 점집을 찾는 사람들도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일 것이다. 초미지급(焦眉之急)의 절박한 심경에서 앞날을 예측해 보고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발길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강한 의지와 꿋꿋한 신념 필요

몸에 병이 있으면 의술이 필요하듯이 마음의 병 또한 치료가 필요하다. 차이는 있겠으나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과 아픔은 육체의 병이나 마음의 병이 다르지 않을 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에 당면했더라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곤경을 견뎌내겠다는 강한 의지와 꿋꿋한 신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탄방동에서 살았던 10년은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라 해도 그보다 더 지독한 각본을 쓸 수 없을 만큼 만고풍상을 겪었던 시간이었다. 간신히 한 고비를 넘기면 또 깊은 계곡이 기다리고 있고 죽을 힘을 다해 계곡을 빠져나오면 더 험준한 가시밭길이 가로 놓여 있었다. 당시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있던 나는 죽은 사람이 거하는 음택도 중요하지만 양택 즉 산사람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집을 옮기기 전에 아예 양택에 맞춰 문(門) 주(住) 조(灶)를 리모델링하고 이사를 했다. 간(艮)문에 곤(坤)주로서 운도 풀리고 심신도 편안해 지리라 믿었으나 양택 신봉이 무색할 정도로 되는 일없이 꼬이기만 했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성명학을 공부한 지인이 이름이 나쁘면 겪지 않아도 될 시련을 겪는다며 이름을 바꿔보라고 했다. 대체의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학과 풍수지리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 계기로 성명학에도 관심이 있었던터라 주저없이 지인이 소개하는 작명가를 찾아갔다. 작명가는 내 이름 김기순(金基順)을 보자 날개 부러진 학이 울고 있는 형상이라며 당장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더 큰 화가 닥칠 거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므로 미적거릴 여유없이 사례비를 지불하고 생년월일을 적어주고 1주일을 기다렸다. 1주일 후 우편으로 김서현(金序泫)이라는 새 이름이 도착했다. 운도 좋아지고 복도 도래한다는 김서현은 어감도 좋고 세련미가 있어 맘에 들었다. 그런데 한글오행 초성을 보니 ㄱ(木) ㅅ(金) ㅎ(土)은 상극관계로서 오행상 맞지 않았다. 게다가 현(泫)자는 눈물 흘리는 모양이라는 뜻도 들어 있었다. 지금까지 흘린 눈물도 많은데 또 눈물을 흘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현자를 바꾸겠다고 하자 획수가 맞는 한자가 없다고 했다. 돈 생각이 났지만 거액을 들여 개명한 이름을 안 쓰기도 아까워 문단에서만 간간이 사용했다. 
 
개명효과 없고 일도 안풀려

물론 개명의 효과는 없었고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귀 얇은 나에게 오래전부터 가까이 지내던 인문학 선생이 사람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지형에 붙여진 지명도 중요하기 때문에 나의 사주와 맞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언젠가 신문에서 지명의 중요성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명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나는 화(火)가 많은 사주인데 숯 탄(炭)자가 들어있는 탄방동(炭坊洞)에서 살고 있으니 불이 마치 숯을 만나 몽땅 소멸되는 이치라 했다. 

이 환난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다시 집을 옮기는 것쯤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사를 결정하고 집을 구하러 다니는데 같이 역학을 공부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했다 들었는데 좀 어떠냐고 물으니 운이 나빠 고생한 거라며 역학에 심취해있는 사람답게 운 타령을 했다. 나 역시 이런저런 일로 고생한다며 이사를 하려 한다고 하자 내 사주에 나쁜 운이 들어와서 그런 거라며 건강을 조심하라고 했다. 내가 보았을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사주란 풀이하기에 따라 이현령비현령이란 회의가 들면서 머릿속이 가시덤불처럼 뒤엉켜 혼란스러웠다.  

양택이 문제인가 했더니 이름이 문제라 하고, 이름이 문제인가 했더니 지명이 안 맞는다 하고, 지명이 문제인가 했더니 사주에 나쁜 운이 들었다니, 내가 무언가에 사정없이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영혼이 얼마나 허약하고 의존성이 강하면 여기저기에 정신을 빼앗기고 에너지를 소비하고 시간 낭비를 했단 말인가. 정체 모를 역이니 오행이니 운이니 하는 것들에 실컷 놀아났다는 생각을 하니 화도 나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것이 현실의 고통과 미지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겪는 이중고일 것이다. 욕지미래(欲知未來) 선찰이연(先察已然)이라 했다. 미래를 알고자 하거든 이미 지나간 일을 살펴보라는 말처럼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성실히 살면서 순리를 따르는 것이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는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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