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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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들의 세상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8.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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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이 발행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를 ‘얼치기’라 정의하고 있다. 풀어 말하자면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을 뜻한다 하겠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치고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58년이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간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이자 외교가ㆍ역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마키아벨리(Machiavelli, Niccoló 1469~1527)는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구별된 고유의 영역’임을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을 제창하여 근대적 정치관을 개척한 당사자다.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다. 특히 그가 지은 ‘군주론’은 비록 취직자리를 얻기 위한 청구논문에 불과했지만 그로 인한 후폭풍은 너무도 컸다. 너무도 직설적이고 대담함 때문에 그를 채용할 권력자들의 경계심으로 인해 취직은 커녕 오히려 취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말았다. 심지어 ‘악마의 서’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써야 했다. 반면에 그의 아이디어는 북방의 군주들에게는 지혜를 제공해 주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이렇듯 미운 털이 박혀 버린 마키아벨리는 평생을 권력의 중심부에 들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사후 400년이 지나 인정 받아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가 죽은지 4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베이컨을 비롯한 스피노자, 루소 그리고 헤겔 등이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시 마키아벨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너무나 악명 높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당신’ 정도로 인식되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단호한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살인을 포함한 어떤 것도 다 용인이 되며 심지어 종교조차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렇다고 그가 진정으로 ‘악마’와 같은 사상가였을까, 그는 누구나 글로는 차마 쓰지 않는 성애(性愛)에 관한 저서를 냈다고 해서 그 자신이 성애 방면의 실천적 베테랑이 아니듯 그 역시 글만 그렇게 썼을 뿐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이름이 사람의 실체가 아니듯 책과 마키아벨리는 별개였다. 

문제는 마키아벨리가 빼대있는 가문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규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중세 신분제도의 잔영이 짙게 드리워진 시기였기에 한번 관직에서 쫓겨나면 달리 그럴듯한 새 직업을 가질 자격도 없었다. 식견이야 능히 강단에 서고도 남았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은 그를 불러 줄 대학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변호사마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일을 잘 처리했다고 해도 핵심멤버는 못되고 중심부만을 맴도는,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보통사람도 아닌 반주변인으로의 삶을 살았다. 

죽을줄 모르고 뜨거운 불빛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은 얼치기들

그렇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16세기나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한 것 같다. 그때도 마키아벨리와 같은 반주변인들이 있었는가 하면 지금도 반주변인들이 도처에서 들끓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키아벨리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름의 실력을 보유,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실력있는 반주변인이었다면 지금의 반주변인들은 아무런 지식도 능력도 힘도 없는, 다시 말해 텅 비어 버린 머리만 달고 있는 빈 깡통과도 같은 얼치기들이 횡행한다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끼일데 안끼일데 가리지 않고 시도때도없이 뜨거운 불빛을 향해 목숨을 거는 존재들이다. 바로 이러한 불나방과도 같은 존재들 때문에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민심은 자꾸만 흉흉해져만 간다. 이들은 헛소문을 잘 퍼뜨린다.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조직의 배신정도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그들의 이용물이 되고 있다. 원컨대, 이쯤에서 얼치기들의 소멸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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