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2)
상태바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2)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8.26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주제독을 사직하다

1587년 여름이었다. 조헌은 진소회잉사직소(陳所懷仍辭職疏)를 관찰사를 통해서 올리려고 했다. 박순과 정철을 변호하고 간사한 무리들이 나라를 그르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산해의 오국(誤國)을 논하고 정여립의 험상하고 패악함과 이발·이길을 극력 논박하는 것이었다. 이 역시 장문의 만언소(萬言疏)였다.

 상소문이 제출되자 관찰사 권징은 자기에게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조헌은 다시 짧은 소를 지어 6월에서 9월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상소를 올렸으나 권징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향교에 앉아서 초나라 애국시인 굴원이 지은 초사(楚辭)를 읽고 그 소감을 시로 읊는다.

霜秋寥廓夜凄其 서리 내리는 적막하고 쓸쓸한 가을밤
午就簷陽點楚辭 한낮 처마 아래서 점찍은 초사(楚辭)에 
我是東韓一狂士 나는 동한(東韓)의 미친 선비
如何對此涕漣洏 어찌하여 이를 대하고 눈물 흘리나

조헌은 공주제독을 사임하고 옥천으로 내려와 강학으로 일생을 마치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공자를 모신 문묘에 글을 지어 고한다. 

고사성묘문(告辭聖廟文) 

“그 자리에 있지 않거든 그 정사(政事)를 꾀하지 말라.” “행실은 고상하게 말씀은 겸손하게 하라.”라는 훈계는 밝고 또 지극하며 달콤한 말로 나라를 망치는 것은 공자가 미워한 바이고 우리 임금이 능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맹자가 적이라고 불렀습니다.

헌은 지난 가을에 스승과 벗들이 무고를 당한 데 대하여 통탄하였고 두 차례나 이를 임금께 변명하는 소를 올려서 어리석은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임금께서도 밝게 고쳐주시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간사한 사람들은 맑지 못한 기분을 덮어 숨기려 하는데 힘을 다하였기에 재해가 아울러 이르고 흉년이 겹쳐왔습니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백성들이 떨어져 흩어지고 밖으로는 군사들이 무너져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 장래의 근심하는 바가 어찌 홍수와 맹수처럼 될 뿐이겠습니까?

조정의 의논들이 불안한 표정을 갖고 모두 헌으로 말미암아 시끄럽게 되었다 하여 대관, 미관 할 것 없이 직장을 비운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성균관의 선비들이 다른 말만 믿고 헌에게 배우다가는 미치광이가 될까 두려워한다 하오니 여러 준수한 인재를 성취시키기란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이 고비석(皐比席, 文席의 별칭)에 앉아 있을 면목이 없으므로 마음속에 있는 것을 쏟아서 임금께 세 번이나 호소하고 거친 산골로 돌아가서 벌 받으란 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리려고 합니다.

아! “쓰이면 나와서 도를 행하고 버리면 물러가 은퇴한다”는 것은 소자의 바랄 바가 아니고 세상을 잊는데 과단성이 있고 용감하게 하는 것은 선성께서도 한탄하신 바입니다. 명정(明廷)에 삼가 작별을 고하게 되니 깊이 사모함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조헌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를 행함이 어찌 벼슬과 관계되랴. 그가 관직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공주제독을 사임하는 심정을 제문에 그대로 담았다.

선조실록에 조헌이 사임하는 이유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공주제독 조헌이 주도(州道)를 통하여 소장을 올렸는데 감사가 받지 않자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조헌이 만언소를 올려 시사(時事)를 말하자 조론이 공박하기를 마지않았으나 상이 용서했다. 같은 해 5월에 다시 소장을 올려서 시사에 관해 극언하면서 고금의 사례를 원인(援引)하여 분주(分註)해서 첩황(貼黃)하였는데 모두 수만 언(言)이었다. 가난하여 행장을 꾸려 서울에 올라올 수 없으므로 관례대로 주도(州道)를 통하여 소장을 올렸다. 감사가 그 소장 내용이 시기(時忌)에 크게 저촉됨을 보고 연루될까 두려워하여 격례(格例)에 잘못이 있다고 핑계하여 물리쳤다. 조헌이 곧 짧은 상소를 네 번이나 올렸으나 네 번 모두 받지 않았다. 뒤에 초소(草疏)를 올리려고 했으나 시행되지 못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