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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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5)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9.1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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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입니다

상소문을 들고 한양으로 간 조헌 

관찰사 권징이 조헌의 상소를 받지 않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번 공주 제독을 사임할 때에도 ‘진소회잉 사직소’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6월에서 9월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상소를 올렸으나 자기에게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서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 ‘청철왜사소 제1소’까지 받지 않자 조헌은 한양으로 올라가서 직소할 것을 결심하고 다시 ‘청절왜사소 제2소’를 쓰기 시작했다.

조헌은 제2소에서 일본에 통신사를 보낼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조목을 들어서 논하였는데 그것은 인도와 정의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다.

첫째, 조선으로서는 풍신수길이 원 씨를 쫒아낸 일이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는데 구의를 저버리고 세력에만 부응한다면 이것은 신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거란이 전쟁을 좋아하여 고려가 절교하였고 서온이 임금을 내쫓음에 강목이 죄를 주었다. 새로운 군주의 공적이 비록 크게 드러났다 하더라도 전왕이 폐출된 까닭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터에 만약 새로운 사귐이 달다고 하여 예전부터 이어온 좋은 사이를 잊어버린다면 십도 가운데 일부라도 혹 나의 태도가 나무람이 있다면 내 실로 얼굴을 들고 천지의 예옥으로서 설 수가 없을 것이다”

둘째, 조선은 본디 외국에 대하여 모욕을 주거나 침략을 도모한 일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조선은 인도를 숭상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국가임에 반하여 왜국은 무도하고 잔악한 무리들인 만큼 결코 혼동할 수 없는 것임을 논하였다. 

“조종 이래 나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지켜온 보방의 규칙은 한 번도 군사를 일으켜 바다를 건너 남으로 간 일이 없었다. 오직 이 일로 하여금 대마의 반적을 토벌한 것은 너희 나라의 늙은이들은 다 아는 바이다. 그럼에도 너희 나라의 적선들은 매년 들여다보지 않은 때가 없고 우리 어부들을 잡아가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사람을 구워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아이의 살점을 발라낸다는 것은 천하의 어떤 나라에서도 들어보지 못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조헌은 우선 정해년(1587년) 2월 왜적이 조선의 흥양(고흥)을 침범했을 때 조선인으로 일본에 도망하여 길잡이를 했던 자와 그 무리들을 잡아 보내고 다시 침범이 없도록 조치할 것을 종용하여야 한다고 했다.

셋째, 처음에 통호한 것은 고도한 도덕과 문화를 밝혀서 선린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이것이 차츰 변질하여 장사나 하고 행패를 부리어 근본정신을 저버렸으므로 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에 너희 나라가 우리나라에 통호한 것은 작은 나라의 힘으로 이웃을 위협해서가 아니요 반드시 구주와 팔조의 가르침이 기자로 말미암아 먼저 밝혀졌고 주공정주의 학이 널리 세상에 행하여 그 설을 얻어 듣는 자는 작게는 가히 가족을 보존하고 집안을 바르게 하여 크게는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조에 통호한 것으로 말하면 빙문하는 것 이외에 혹 경적을 탐하여 물건은 별것 아니로되 정은 두텁고 일은 간이하되 폐단이 없어서 왕래함이 힘들지 않게 수작하였다. 그 후 사신이 점점 장사를 숭상하고 뜻에 맞지 않으면 사나운 안색을 비추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시민을 죽이고 변환을 일으킴에까지 이르렀으니 겸양하는 기풍을 무너뜨리고 양국의 화기를 손상시킨 것은 또한 너희 나라의 견식 있는 사람들도 한탄하는 바이다”

조헌은 포은 정몽주가 고려 말 위난 시에 국사를 널리 주선하여 담론으로 중론을 모았던 것을 강조했다. 국정을 공고히 하고 위난을 대비함에 있어 실정을 거듭하면서 왜사에게 이끌리기만 하는 이목이 없는 자들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유능한 인재를 불러 임무를 맡기고 의논할 것을 건의하였다.

1587년 12월, ‘청절왜사소 제2소’를 쓴 조헌은 그동안 올리지 못한 ‘진소회잉사직소’ 등 다섯 건의 소장과 ‘청절왜사 제1소’등을 모두 가지고 한양으로 가서 임금에게 직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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