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네 가서 익사한 여름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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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네 가서 익사한 여름장마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1.09.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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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코앞인데 하루도 좋은 날 없이 비가 내린다. 이 때가 되면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시원하고 남빛하늘 드리운 가을초입의 날씨와 마주해야 하는데 지겨울 정도로 눅눅하기만 하다. 

장마라 함은 유월 하순에 시작하여 칠월 중하순까지 이어지는 우기에만 붙이던 이름이지만 이젠 공공연히 가을장마란 말이 입에 오르내린다.

근래 여름장마는 가을장마에게 체통을 구기고 있다. 가을장마야 전에도 있었다. 요즘의 여름장마가 비실대니 가을비가 부각이 되며 장마란 호칭까지 획득한 게 아니겠는가. 가을비가 독하기로도 여름장마를 깔고 앉을 정도다. 이때부터 오는 태풍과 합작을 하면 가을장마야말로 맵다. 이게 벼 수확기까지 끌고 가면 그해 벼 수확은 물말이가 되어 엉망이 된다. 추수에 애를 먹는 건 물론이지만 사료로 중요한 볏짚을 썩히게 되어 품질이 불량한 사료를 소에게 먹일 수 밖에 없다. 

세상의 무서운 것 중의 한 가지가 수해이다. 이것이 훑고 지나가면 남는 게 없다. 재산상의 피해는 물론이지만 목숨마저 부지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옛날보다는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잘 되어 이런 걱정이 덜하지만 자연재해는 전쟁만큼이나 두려운 것이다. 옛날부터 산을 잘 다스리고 물을 잘 다스려야 백성이 평안하다고 했다. 어련한 말씀이랴.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기본 중의 기본이다. 강을 잘 다스리고 둑을 튼튼히 쌓아놓으니 큰비에 다리를 뻗고 잘 것이요 산을 잘 다스리고 수목이 우거지니 산사태 위험없이 산 아래 동네가 안전하다.  

여름장마도 지루하고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가을장마는 더 그늘을 만들게 된다. 가을하면 그래도 맑은 공기와 청명한 하늘 아니겠는가. 모처럼 찾아온 좋은 절기를 비가 망친다면 서글픈 일이다. 거기에 태풍이 겹친다면 재해까지 걱정해야 한다. 

여름장마건 가을장마건 그게 길어지면 가장 크게 피해를 보게 되는 게 농사다. 난 크지 않은 밭뙈기 하나 부치지만 날씨에 너무 민감하게 된다. 조금 가물어도 걱정, 비가 많이 와도 걱정, 걱정은 끝이 없다. 비가 오면 소금장수가 걱정을 하고 날이 가물면 우산장수가 살기가 힘들어지듯 농사도 기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기후는 항상 사람에게 좋게만 하지는 않는다. 요즘 농사는 관정도 파고 여러 시설을 잘하여 비나  가뭄 걱정은 옛날보다 덜 하지만 어쨌든 농사는 일기에 좌우된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다. 칠년대한(七年大旱)에도 하루만 참아 달라는 사람은 있었다는 얘기다. 7년을 가물었는데도 오늘 하루만 참아줬으면 내일까지만 참아줬으면 하는 사람은 항상 생긴다. 모처럼 며칠 여행이라도 하려면 나 여행기간엔 비가 안 와야 한다. 집안의 대사를 앞두고 있다면 역시 비가 와선 안 된다. 고로 인간기대에 부응하려면 한마디로 비는 못 온다. 

앞으론 농사도 자연현상에 영향을 안 받고 짓는 시대가 꼭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데 전천후 농사시설을 하려면 시설비와 유지비가 많이 드는 게 문제다. 농사가 수지타산이 아주 박한 것이어서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어렵다. 이런 농사의 시설투자에는 항상 국가의 지원이 따라야 한다. 농업이 기계화되니 농가에 대형 농기계가 많다. 농사 끝나고 농기계 융자금 갚고 수리비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크게 없다. 지금은 빌려 쓰는 농기계가 있어 그걸 이용하면 좋다.

장마가 오래 지속되면 여름장마건 가을장마건 불쾌지수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가을바람이 살랑대며 햇빛이 나면 공기가 까슬까슬 기분도 상쾌해질 텐데 매일 비가 오며 눅눅하니 그저 짜증스러울 뿐이다. 거기에 매일 코로나 소식이 불쾌지수를 더 높인다. 언제쯤이나 마스크 벗고 정상생활로 돌아갈는지.

오늘은 모처럼 비없는 아침이다. 내일이 십일대조(十一代祖) 선산 벌초일인데 비 예보가 없어 다행이다. 다 모이면 엄청 많을 자손들이 나오는 사람은 많아야 대여섯 사람이니 걱정이다. 조상님 위하는 일엔 후손들이 나서질 않는다. 장마가 속히 걷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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