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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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꾼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09.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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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다양한 부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세 치 혀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농부의 근성과 같이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열매를 맺으면 맺는대로 안맺으면 안맺는대로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평생 남의 짐을 대신 날라주며 비록 얼마 안되는 수입이지만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그들을 ‘짐꾼’이라 부른다.

짐꾼은 나라마다 다 있다. 특히, 산이나 부두 또는 기차역과 같이 많은 물건들이 오고가는 곳에는 반드시 그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산에서 사는 짐꾼들의 삶은 사뭇 다르다. 그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한 발 한 발 물건을 옮긴다.

일본 오제국립공원에는 ‘봇카’라 불리우는 짐꾼이 있다. 올해 39세인 이가라시 씨는 80kg이라는 무게의 짐을 들쳐 매고 산을 오른다. 맨 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산길을 그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오늘도 험난한 인생의 무게를 지고 12km나 되는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어오는건 고작 1kg당 1,000원 남짓. 그래도 불만이란 찾아볼 수 없다. 만면에 웃음띤 모습이다. 그리고 행복해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 안 끼치고 자신 스스로 피땀흘려 번 돈이라는데 매우 만족해 한다. 

중국 화산성에도 ‘봇카’와 똑같은 짐꾼들이 있다. 28년 경력의 뚜이 씨. 그는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짐꾼 생활을 시작해 짐꾼들 사이에서는 고참 중의 고참으로 통한다. 그렇다고 후배들이 자신의 짐을 대신 옮겨 줄 수 없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져야 할 몫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었다고 배달을 맡기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앞설 뿐이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힘닿는 날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뚜이 씨 역시 40kg의 짐을 지고 수천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짐을 옮겨주면 나면 그의 손에는 우리나라 돈 7,000원이 주어진다. 

태국 푸끄라등국립공원에서 짐을 옮기는 껍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짐을 나르는 도구래야 대나무 하나가 전부인 그는 72세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80kg의 물건을 어깨에 맨다. 그리고 70도 경사를 오르내린다. 더욱이 오후 2시 이후로는 산행이 금지돼 목적지까지 갔다 오려면 걸어서는 안된다. 뛰어야 한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의 다리는 연신 후들거린다. 껍 씨 역시 9km를 걸어 짐을 옮기면 1kg당 30밧(우리나라 돈으로 980원)을 받는다. 

‘짐꾼’, 누군들 남의 짐을 나르며 삶을 이어가고 싶겠는가. 그들이라고 부동산 투기와 사기로 남의 등을 치며 살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들이라고 부모 그늘에 얹혀 사는 삶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다르다. 자신이 넘지 못할 숙명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저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땀흘려 사는 것이 가장 솔직하고 가장 가치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딛는 발길이 어찌 평지처럼 순탄만 하랴. 때로는 가시덤불에 스쳐 살갗이 베여 쓰라리고 아파도, 때로는 돌부리에 넘어져 피가 나기도 한다. 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달해야 할 물건이 있으면 반드시 정해진 시간 내에 배달을 해야 한다. 나름 그들의 세계에도 상도덕이라는게 있고 규칙이 존재한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힘든 삶을 살게 할까, 그리고 그러한 삶에서 얻는 것은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가장이라는 책임으로 인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는데 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내가 벌어 내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나름의 자긍심이 그들을 오늘도 산에 오르게 하는 추동력을 갖게 한다. 

갈수록 세상살이가 삭막해지고 버거워져만 간다. 그래도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나누어 먹고 마을에 사람이 죽으면 최소한 마음만이라도 같이 슬퍼해 줄줄 아는 연민의 정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런데 작금의 시대는 전혀 다르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나 도덕은 그저 사전 속의 단어에 지나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눈에서 눈물을 나게 해 내가 이익을 얻을까 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성경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다. 성경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삶에 대해 이미 간파를 하고 있었다. 

이가라시 씨는 말한다.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고. 그리고 “가능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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