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보다는 전통에 더 가치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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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보다는 전통에 더 가치 둬”
  • 김병학기자
  • 승인 2021.10.21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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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전통의 ‘이원양조장’
이원양조장 강현준 대표는 물질만을 생각했다면 지금의 양조장도 이어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제논리에 갇혀 자율시장에 맡기기에 앞서 전통잇기라는 보다 더 큰 틀의 사고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양조장 강현준 대표는 물질만을 생각했다면 지금의 양조장도 이어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제논리에 갇혀 자율시장에 맡기기에 앞서 전통잇기라는 보다 더 큰 틀의 사고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0대 이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 했음직한 것 가운데 하나가 부모님 막걸리 심부름일게다. 70~8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이 논농사를 많이 짓던 시절이라 특히 모를 심거나 벼를 벨때면 으레 막걸리가 등장했다. 이렇듯 농번기가 돌아오면 각 가정에서는 자식들을 상대로 마을 구멍가게에서 막걸리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그러면 자식들은 노란 주전자를 들고 가게에 가 외상으로 막걸리를 사왔다. 문제는 그 다음, 호기심 많은 남자아이들은 막걸리를 사들고 오는 길에 한모금 두모금 홀짝홀짝 하다 보면 어느새 가득했던 주전자 안은 눈에 띨만큼 줄어들고 만다. 혼날 것이 두려운 아이는 근처 냇가에 가서 아무도 모르겠지 하며 흐르는 냇물을 퍼담는다. 그리고 시치미를 뗀 채 아버지에게 막걸리 주전자를 건네 준다. 그런데 그 다음이 가관이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대낮에 한 두 모금 마신 막걸리에 취해 걸음걸이가 불안정한 아이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저 자식, 우리가 먹을 막걸리를 저놈이 다 쳐먹었네”라며. 그래도 누구하나 나무라기는커녕 그저 허허 웃음으로 넘겼다. 그래서 지금도 막걸리는 서민들의 가장 친한 친구요 영원한 벗인지도 모른다.

강 대표가 고두밥에 균을 파종하는 일명 입국작업을 하고 있다.
강 대표가 고두밥에 균을 파종하는 일명 입국작업을 하고 있다.

전통 거부하면 모든게 뒤죽박죽

그런 막걸리가 지금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옥천군 이원면에서 4대째 이원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강현준(51)대표는 그래서 마음이 짠하다. 

강 대표의 전직은 건설업이었다. 지금의 양조장도 몇 해 전 작고하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받은 것이다. 사실 경제적으로 생각한다면 굳이 양조장을 물려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산(?)인지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사이 자연스레 물려받고 말았다. 올해로 만 8년째 막걸리를 만들어 오고 있다.

“돈만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거부했을 겁니다. 아무리 물질만능 시대라지만 전통이라는게 있습니다. 만에 하나 저마저 이러한 전통을 거부해 버린다면 모르긴 해도 다른 분야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겁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될 경우 우리사회는 미래란 꿈꿀 수 없으며 모든게 뒤죽박죽이 되고 말겁니다”라고 했다.

과거없는 현재는 없으며 현재없는 미래란 존재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의 양조장 역시 그런 맥락에서 물려 받았다고 했다. 전통도 살리고 가업도 물려받고 말이다.

강대표가 개발한 ‘풀섶이슬’. 이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강대표가 개발한 ‘풀섶이슬’. 이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불확실한 미래 장담할 수 없어

하지만 이러한 강 대표의 소박한 꿈을 디지털시대는 외면하고 있다. 너무도 먹을 것이 풍부한 오늘날 굳이 막걸리를 찾지 않아도 얼마든지 더 맛있고 영양가 높은 먹거리가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2010년 잠시 막걸리 시장이 한류 열풍으로 인해 일본인들 때문에 활성화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부터 줄곧 내리막길을 걷더니만 지금은 당시 매출액 대비 1/3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가는데까지는 가겠지만 계속해서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다면 저 역시 어떻게 해야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가업을 이어받는 사람이 나타나리라 생각하는건 너무도 염치없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강 대표가 시장의 흐름을 손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건 아니다. 나름대로 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향수’와 ‘이원’ 그리고 ‘시인의 마을’이라는 전통 막걸리 외에도 올 초부터 쌀과 밀을 이용한 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풀섶이슬’이란 이름의 쌀소주는 알콜농도 18도씨와 38도씨를, ‘수작’이라는 이름의 밀소주는 25도씨의 알콜을 함유하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제품을 만든 이유는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게 훨씬 현명하다는 생각에서다. 여기에 수년 전부터 잠재 고객 유치를 위한 ‘막걸리체험프로그램’도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아쉽게도 모든 준비를 마치자마자 미처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 주저앉고 말았다.

자율시장에 맡기는 것도 한계

이러한 문제 외에도 강 대표를 괴롭히는건 얼마든지 차고 넘친다.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이러저런 궁리를 해보지만 언제나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힘이 빠지고 만다. 

생산시설을 현대화하고 한단계 높은 제품을 생산하려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문제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시설검열과 불투명한 시장성은 없는 힘이나마 내보려 하는 강 대표의 의지를 여지없이 물거품으로 만들고 만다.

“물론 다른 업종도 사정은 마찬가지이겠지만 오랜 전통을 지닌 분야에 대해서는 지자체나 중앙 정부에서의 계획적인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러하지 않고 그저 업계 자율시장에만 맡겨 버린다면 저같이 전통 하나만을 잇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허무한 결과만이 나타날겁니다” 

이원양조장은 지난 달 27일 충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 선정 ‘100년소상공인’에 뽑혔다.

1930년 금강변에서 시작된 이원양조장은 당시 술맛이 일품이기로 소문이 자자했으며 직원들만도 28명에 이르는 대규모 지역 양조장이었다. 그러나 금강변의 잦은 홍수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1949년 지금의 자리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특히 1950년 6·25전쟁의 아픔과 1960년 5·16혁명 등 굵직한 근현대사의 통증을 함께 나누며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옥천 소재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양조장이기도 하다.  

이원양조장 외부 모습
이원양조장 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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