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말하는 어머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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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말하는 어머니의 삶
  • 김동진기자
  • 승인 2021.10.2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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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슈퍼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만 했다”라고 말하는 김용분 대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만 했다”라고 말하는 김용분 대표

‘동네 슈퍼’, 시대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지금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야 할 정도로 희귀한 존재가 돼 버린 ‘동네 슈퍼’. 대형슈퍼가 없는 시골 역시 한 마을에 한 개가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길 1에 위치하고 있는 ‘사계절슈퍼’(김용분, 79, 여).

‘사계절슈퍼’란 이름은 김 대표가 직접 작명했으며 ‘1년 사계절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명절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연다.

연탄 장사에서 ‘사계절 슈퍼’까지

꽃다운 스물 세살에 시집 와 장사와 세 아들 뒷바라지에 청춘을 바쳤다. 섬섬옥수 같던 경상도 아가씨는 어느새 팔순의 할머니가 됐다. 억척같이 살아온 옥천에서 60여 년, 홀로 연탄 장사에서 슈퍼까지 모진 고생으로 집과 가게를 장만했다. 그동안 장사로 익혀온 셈하는 솜씨는 지금도 암산으로 손님들의 물건값을 계산할 정도로 젊은 사람들을 놀래킨다.

증약에서 시작한 정육점 식당
88올림픽 개회식 날 개업

1966년 충북의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남편의 집안은 공무원 집안으로 비교적 잘 살았다. 하지만 남편은 부잣집 막내아들로 귀염 받고 자란 탓인지 생활력이 부족했다. 결국 김 대표가 생활전선으로 뛰어 들어야 했다. 몇 날 몇 일 밤을 새워도 다 못할 사연을 뒤로 한 채 장사라는 길에 들어선 그녀는 지금 ‘억척 여자’가 됐다. 산에서 땔감을 하고 연탄배달을 하며 틈틈이 밭일까지. 지난 세월 그녀가 지나온 삶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1988년 군북면 증약에서 시작한 정육점 식당, 개업하는 날이 마침 88올림픽 개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그런 천운이었는지 장사는 날개를 단 듯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이후 옥천읍에 대형 정육점이 생기면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대형 정육점으로 손님들이 이동해 갔다. 결국 증약에서 장사를 접고 이백길로 이사를 했다. 

1995년 이백길에서 시작한 정육점 식당, 개업 초부터 장사가 잘 됐다. “남편이 발이 넓어 주변에 아는 손님들이 많이 왔다. 남편이 중풍으로 마음대로 움직이질 못해 그 집 가서 고기 사가고 술도 마셔야 한다며 남편 친구들이 많이 왔다. 주변에서 도와줘서 이 집과 슈퍼도 장만할 수 있었다. 군북 이백길에서 식당해서 집 산 사람은 나 뿐이다. 그간 도와주신 분들이 고맙다”

남에게 빌리는 건 용납안돼

김 대표는 성격상 남에게 돈 빌리러 가는 것도 공짜로 받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데다 남편마저 중풍으로 몸져 누웠 있으니 홀로 장사하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악착같이 살았다. 

김 대표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 내가 벌어야 가족이 먹고 산다는 각오로 살았다. 애들을 잘 가르쳐야 했는데 장남만 이를 악물고 가르쳤다. 둘째와 막내에게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니 내가 공부 많이 시키기 어렵겠다’ 했더니 엄마를 이해해줬다. 그때는 목표라는 걸 정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눈만 뜨면 일하고 자식들 밥 안 굶겨야겠다는 그것만 생각했다”

존경받을 어머니의 모습

생활력 없고 불성실한 남편으로 인해 몸 고생 마음 고생하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지금도 슈퍼를 하며 생활력 강한 옥천의 어머니로 가족의 건강을 바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김 대표. 새벽 4시에 일어나 밭에 나가 일을 하고 6시에 슈퍼로 출근하는 부지런함과 성실함, 억척같은 삶이 자식들 뒷바라지에 슈퍼와 집 장만까지 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쉽지 않은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희생, 세상이 말하는 ‘어머니’이기에 가능했던 삶이다. 

심장 수술로 늘 약을 달고 살다 보니 어느새 체중이 10kg 이상 줄고 혈액순환마저 잘 안돼 손발이 차다. 지금도 2개월에 한 번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아픈 남편 병수발도 동시진행형이다. 

군북면 이백길 1에 있는 ‘사계절 슈퍼’ 전경
군북면 이백길 1에 있는 ‘사계절 슈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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