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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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와 까마귀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1.10.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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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살며 길조로 여기던 까치. 아침에 까치가 와서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고 최소한 반기는 손님은 안 온다 해도 마음만은 종일 즐거웠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 ‘서리까마귀 우지짖고…’라는 구절이 있지만 까마귀는 길조(吉鳥)에 대비되는 흉조(凶鳥)로 여겼다. 크기도 비슷하고 모양도 비슷한 색깔만 다른 새였지만 우리에게 주는 생각은 극과 극이었다. 그간 까마귀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까치는 길조란 이름에 걸맞게 인가로 파고드는 새다. 항상 사람 곁을 맴돌면서 동네 속에서 우리와 동거를 한다. 굉장히 약은 까치는 사람 가까이에서 힘 덜 들이고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쉽다는 걸 안다. 우리 마당 한 귀퉁이에는 거름으로 쓰려고 집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있다. 여기엔 매일 까치가 방문해서 식사를 맛있게 하고 간다. 난 굳이 그들을 쫓지 않는다. 

까치는 1월 말쯤 집짓기를 시작한다. 이것도 시대를 따라가는지 예전엔 동네 나무에 집을 짓더니만 요즘엔 한전사람들과 사생결단을 하면서까지 전주에 집을 짓느라 엄동 속부터 요란하다. 이 소동은 항상 까치가 패하지만 해가 바뀌어 다음 해 1월이 되어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까치의 고집이 이리도 센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어린 시절 동네 괴팍한 아이들은 높은 나무에 올라 까치 알을 곧잘 꺼내서 내려왔다. 아이들은 재미로 하는 장난이지만 애써 짓는 까치의 자식 농사를 망쳐놓으니 까치에게는 정말 못할 짓이었다. 

사람의 까치 사랑하는 마음은 극진했다. 모든 게 어려운 때였지만 가을에 감을 따면서도 항상 몇 개는 남겨 두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까치밥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도 감을 한 개도 남김없이 따기가 나무에게 미안해서 항상 몇 개를 남기고 땄지만 그게 까치밥으로 불린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감을 따면서 보면 잘 익은 홍시는 까치나 까마귀가 먼저 시식을 한다. 잘 익은 것일수록 한쪽을 파먹은 흔적이 있다. 그것도 입으로 베어내곤 맛있게 먹었으니 까마귀의 침이 사람에게까지 묻어온 셈이다. 

이 길조 중의 길조가 해조(害鳥)로 돌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녀석이 농사에 제일 귀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옥수수밭에 까치가 들어오면 무슨 수단을 써도 막기가 어렵다. 옥수수 대를 망으로 둘러싸도 어디로든 들어와 대를 분질러 놓고 잘 익은 것부터 맛있게 자신다. 옥수수 뿐이 아니고 과수원에도 그렇고 거의 모든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원흉이다.

하지만, 까마귀는 사람 속으로 파고들지 않고 거리를 두고 생활한다. 언젠가 TV에 어미 잃은 까마귀 새끼를 할머니가 데려다 기르는 게 나왔다. 이 녀석이 잘 따르며 ‘에취’하는 할머니 말까지 따라하는 걸 보고 너무 신기해서 웃은 적이 있다. 까마귀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낼 수 있는 걸 처음 알았다. 한데 까마귀는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흉조다. 실은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는 까마귀를 왜 흉조로 여길까. 아마도 그 까만 색깔이 그리 만들지 않았을까. 까만색은 죽음을 의미하니까.

까마귀도 농작물을 해치지만 까치보다는 덜하다. 까치가 훨씬 지독하다. 까마귀야 예부터 흉조로 여겼지만 친근했던 까치가 인간의 적이 되었다는 데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믿었던 까치가 사람을 배신할 줄이야. 까마귀는 사람을 멀리 한다. 하지만 까치는 항상 사람 곁에 있으니 사랑도 더 받았지만 해조로 바뀌고는 피해도 더 입히는 것이다. 

과일 한두 개 파먹고 강냉이 몇 개 먹더라도 너무 유난스럽지만 않다면 그렇게 미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쉽다. 까치는 너무 극성스럽다. 농사는 병충해, 조류, 고라니나 멧돼지, 일기에까지 맞서야 하는 전쟁이다. 누구든 내 일이 아니면 당사자처럼 심각할 수는 없다. 이것도 농부들이 직접 접하고 당하는 고통일 수 밖에 없다. 농부들에겐 생명과 같은 생업을 망치느냐 마느냐 피 말리는 전쟁인데.

유해조수(有害鳥獸)도 공존하자는 얘기도 있지만 산골 밭엔 멧돼지가 좋아하는 고구마나 강냉이는 아예 심지를 못한다. 애써 지어봐야 그들의 맛있는 식사 대접하는 일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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