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1)
상태바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1)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1.04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논시폐소는 무리하게 시행한 사북령의 폐해와 공부(공물과 세금), 역역(부역), 형옥(형벌)에 관한 잘못된 정책을 논하고 조정 대신들을 규탄하는 내용을 담은 만언소이다. 조헌은 이 상소를 통해서 관리들의 부패와 무능, 백성들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수탈의 충격적인 진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북령은 남쪽의 백성을 북쪽 국경지역으로 강제로 이주시키는 정책이었다. 북방지역은 외적의 잦은 침략과 위협이 끊이지 않았고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방을 우리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강제적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평안도 일대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이에 응하는 자가 없자 강원도는 물론이고 충청·전라·경상도까지 확대하여 대상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조헌은 전례없는 시변(時變)의 화근이 되고 있는 사북령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한다.

“신이 그윽이 듣건대 요사이 천재(天災)와 시변은 전고(前古)에 없는 바이므로 비록 삼척동자도 미리 헤아릴 수 없는 화가 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화근의 소재는 오직 백성을 옮기는 한 가지 일을 점차적으로 하지 않고 급박하게 처치함으로써 재화(災禍)를 불러온 듯합니다. 비단 이민으로 간 사람만이 의지할 곳이 없어 도망하거나 또는 죽는 것이 아니고 이를 보호하는 인족(가까운 이웃)도 또한 꼬리를 물고 달아나 피하니 비록 상앙(부국강병의 계책을 낸 진나라 사람)의 밀법(密法)으로도 수습을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조정이 제대로 된 대책이 없이 너무 급박하게 이주시킨 당연한 결과였다. 백성들이 북방으로 옮겨가야 할 처지가 되면 모두가 달아나니 지금으로서는 이를 수습할 대책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그 폐해를 이렇게 진언한다.

“심한 말씀을 드린다면 관아에서 날마다 궐(참여하지 않음)로 받아들이는 세 종목이 있으니 연가(烟家)와 환상(還上), 산행(山行)이 그것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세 문서에 나누어 기재하여 삼군문(三軍門)에 나누어 주었으므로 각처에서 이를 점호할 적에 겨우 한곳의 이름에 응하면 두 곳은 궐이 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초피(돼지가죽)와 세포(세마포)를 반드시 그 사람에게 책임 지웁니다”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은 이와 같은 불합리한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관리들의 수탈 행위는 악랄하고 끝이 없었다. 관리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북방 백성들의 실상을 이렇게 상소한다.
“또, 대소의 관료들에게 성대하게 차려내는 음식이 그들의 뜻에 차지 않으면 엄형과 중벌이 따릅니다. 토병(지역민으로 편성된 지방 군사), 객호(다른 지방에서 옮겨와 사는 사람), 포정(백장), 재부(宰夫)들은 처음에는 관곡을 빌어다가 마련하고 다음에는 전지와 집을 팔아 마련하며 마지막에는 친족의 농우까지 빼앗아다가 바쳐도 지탱할 수가 없으니 서쪽으로 달아나고 동쪽으로 도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지방관과 아전들의 가혹한 처사에 이주민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상을 겪고 있었다. 조헌은 임금에게 죄 없는 백성들을 죽을 곳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다.

“지금 쇄환(유랑민이 다시 돌아옴)한다 하더라도 전지와 집이 남의 소유가 되어있고 엄혹한 형벌은 예전보다 더 가중되었으며 태장(笞杖)의 크기가 관죽(管竹)만 하므로 아전과 백성들은 살가죽이 온전한 데가 없습니다. 약간의 창고 곡식으로 오랑캐까지 힘입고 있는 실정으로 주호(主戶)를 넉넉히 해주면 객호(客戶)가 굶어 죽고 객호를 넉넉히 해주면 주호가 굶주리게 됩니다. 나물과 나무 열매로 어렵게 먹고사는 정상은 멀리서 듣는 사람도 놀라게 합니다. 그래서 이주하는 초기에는 모두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마음을 품게 되니 그렇다면 죄 없는 백성을 강제로 몰아다가 반드시 죽을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결코 성상으로서는 차마 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