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첼로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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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첼로가 있었네”
  • 김병학기자
  • 승인 2021.11.11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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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헛헛한 마음 달래려
수생식물학습원서 ‘마음씨앗음악회’ 열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에 잠들게 하라’. 

마음 내키는대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혼자서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

진홍빛 낙엽위에 몸을 맡긴 채 잠시나마 세속의 찌든 때를 벗고 싶어 발길을 옮겼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그날 오후,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배낭 하나 달랑 챙겨 들고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막연히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떠난 길.

얼마를 달렸을까. 숲 속 어딘가에 앉아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맡으며 잠시 숨을 고르려고 내린 곳 ‘수생식물학습원’. 언젠가 한번 와본 이곳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일군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을 따라 ‘천상의 정원’을 들어갔다. 사방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안부를 묻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느냐’고. 그리고 ‘기왕 온 김에 푹 쉬었다 가라’고.

이때 어디선가 고운 선율이 들려 왔다. 그 소리는 매우 무겁고 저음을 자랑하는 분명 ‘첼로’의 음이었다. 아니, 이런 산속에서 첼로의 몸부림이 들리다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랬다. 그곳에는 분명 ‘첼로’가 있었다. 그리고 귀에 익은 ‘넬라판타지아’가 연주되고 있었다.

50여 명의 등산객들은 연주자의 연주에 모두들 넋을 놓고 있었다. 아마도 산속에서 첼로 연주를 들으리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지 못했을터, 더욱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 또한 결코 범상치가 않았기 때문이리라.

사람들은 한 곡이 끝날때마다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첼로 연주자가 말했다. “오늘 연주회는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작음 음악회”라고. 그러면서 “오늘 이 자리에는 일본을 비롯한 중국인과 러시아인들이 많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연주를 못해 많은 시간을 울었다. 오늘도 혹시나 연주를 못할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랐다”고 했다.

첼로는 또 다시 선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다. 그간 녹음된 음만 듣다 생으로 들으니 분위기가 다르다. 연주자의 신들린듯한 몸짓하며 그에 걸맞는 배경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번에는 ‘얼굴’이 첼로의 선을 탔다. 지긋이 눈을 감고 가사를 음미해 본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먼 옛날, 모르긴해도 족히 40년은 넘었으리라. 학창시절 갸름한 마스크에 백옥같이 작고 흰손을 지닌, 짐짓 몸져 누울만큼 예뻤던 여학생이 오버랩된다. 아마도 그녀도 지금쯤은 나처럼 늙어가겠지 하는 씁쓸한 웃음만 입가에 맴돈다.

드디어 음악회가 끝났다. 사람들은 박수로 ‘앵콜’을 외쳤다. 그게 예의라며.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첼로의 묵직한, 때로는 날카로운 선율도 선율이지만 막상 끊겨 버린 첼로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더 심란하게 했다. 분명 그날 그곳에는 ‘첼로’가 있었다. 

무게를 잔뜩 머금은 첼로의 선율은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심연의 늪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했다.
무게를 잔뜩 머금은 첼로의 선율은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심연의 늪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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