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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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3)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1.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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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입니다

국운(國運)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북쪽 변방으로 이주한 백성들의 참상을 세세히 언급한 조헌은 이어서 그에 못지않은 남쪽 지방 백성들의 참담한 생활을 진언한다. 북도의 빈약함은 진실로 근심스러운 일이지만 남쪽 지방의 공허함도 실로 국가의 큰 근심거리라는 것이다. 백성들이 살 수가 없어 흩어지는 까닭은 한 둘이 아니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역역(力役)이 번다한 것, 공부(貢賦 공물과 세금)가 가혹한 것, 형옥(刑獄)이 번거롭고 원통한 것 등이다. 이 세 가지 일이 백성들에게 원한을 쌓게 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말세의 변괴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먼저, 연산군 때에 만든 공안(貢案)이 현실적이지 못하고 공물을 징수하는 관리와 서리들의 가혹한 횡포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

“크고 작은 고을에서 공물을 배정함이 고르지 못하고 조목을 세밀히 나누어 마치 새털처럼 번다합니다. 한 자그마한 물건을 서울로 올려 보낼 때에 인정(人情 벼슬아치에게 주는 뇌물)과 작지(作紙 부가세의 하나)의 비용이 갑절 또는 5배 이상 듭니다. 삼명일(三名日 세 명절)에 바치는 방물(方物 임금과 수령에게 바치는 특산물)의 대가가 지나침이 극도에 달하여 가죽 한 장의 값이 포목 1동(同 무명과 베는 50 필에 해당)이 넘기도 하고 그 나머지 작은 물건도 모두 8 결(結 조세를 부여하기 위한 논밭의 단위)에서 마련하니 포목이 공허해져서 의복이 없으니 추위에 떠는 노약자에 미치지 못합니다. 호조(戶曹)에서는 국용(國用)이 결핍된 것을 근심한 나머지 이문(移文 공문)을 급히 보내어 기준 세액을 확보토록 명령하니 각 고을의 서리는 겁이 나서 흉년을 당한 메마른 땅이건 병충해를 입은 전지이건 일체를 상지상(上之上)으로 과세하여 키머리에서 징수하여 가니 봉납(捧納)도 부족하여 차대(借貸)하는 판에 굶주린 백성이 먹을 것이 있겠습니까”

다음은 역역(力役)의 문제로 군정(軍丁)의 역사(役事)가 해마다 가중되고 결부(結負 논밭의 면적)에 대한 요역(徭役)이 달마다 증가하는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정(軍丁)의 역사는 괴로운 것이 많은데 이웃과 일족에 대한 침탈이 해마다 더욱 가중합니다. 게다가 수령을 자주 바꿈으로써 신구의 수령을 전송하고 영접하는 절차가 빈번하여 객태(客駄 말에 싣는 짐)가 해마다 무거워지고 진상하는 물건에 뇌물을 가지고 가니 우역(郵驛)의 말과 백성의 농우가 날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결부(結負)에 대한 요역이 달마다 증가하는 것은 또 공족(公族)들의 궁실(宮室)에 사용하는 재목을 오로지 백성에게서 판출하여 내고 성을 축조하는 승군(僧軍)의 대가도 곤궁한 민가에 책임을 지우고 경상(卿相)의 집을 수리하는 데에도 이들에게 의뢰하고 있기 때문이니 지금 백성의 역역(力役)이 번다한 것이 예전 백성에 비해 어떠하겠습니까. 옛날의 백성은 공부를 바쳐서 왕실을 호위할 따름이었는데 오늘날의 백성은 사문(私門)의 역사가 한 해에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변방의 역사가 진나라 때의 조고보다 심하니 어찌 백성이 곤궁하지 않고 또, 도둑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셋째로 형옥(刑獄)의 문제는 뇌물이 횡행하여 멀쩡한 양인을 종으로 만들고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실정임을 비판한다.

“형옥(刑獄)의 처리는 법을 무시하고 뇌물의 다소와 형세에 다라 처결하는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양인을 억울하게 천인으로 바꾸며 사람을 빼앗아다 노비를 삼고 탐욕한 사람과 난민들이 남의 분묘(墳墓)를 파헤치고 남의 집을 헐어 빈터로 만드는 등 이리하여 죄 없는 백성이 하늘에 호소함으로써 수재와 한재의 재앙이 이미 초옥(楚獄)처럼 억울할 뿐만 아니라 이 백성의 원한이 화(化)하여 수한(水旱 장마와 가뭄)의 재앙이 되옵니다. 이 어찌 성심(聖心)께서 마음 아파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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