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수 적어 홀대 아닌 홀대 현실 마음 아파
“관로 교체 예산 세우고 내년부터 정상화하겠다”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마을을 송두리째 대청호 조성에 내어주고부터 4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마을은 먹는 물 문제로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도대체 언제쯤 식수로부터 자유로운 날이 올 수 있을까”
소양호와 충주호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대청호. 만수 면적 72.8㎢, 저수지 길이 86㎞, 총저수량 높이 80m, 홍수조절 용량 14억 9000만㎥에 이르는 대청호이지만 실제 혜택은 대전광역시를 비롯한 청주·군산·전주 등 인접 도시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환언하면, 대청호 조성에 마을을 통째로 빼앗긴 주민들은 대청호가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존재라는 얘기다.
옥천군 군북면 막지리 손호연 이장(73). 손 이장은 물만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민감해져 있다. 5년 전부터 맡기 시작한 이장이라는 직책은 그를 더욱 옥죄었다. 본시 남에게 싫은 말 하기 싫어하고 선량하기 그지없는 주민들이다보니 마을 내 모든 문제는 손 이장 몫이 되어 버렸다. 특히, 식수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손 이장은 이장을 맡고 나서야 알았다. 막지리는 대청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해도 120가구에 750여 명의 주민들이 알콩달콩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는데 어느날부터 호수가 조성된다는 발표를 하자 하나 둘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라는 사실을.
손 이장은 “당시 대청호 조성으로 인해 마을 120가구 모두 수장됐다. 그리고 미처 마을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은 마을에서 1.5㎞ 떨어진 산중턱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그간 먹는 물 하나만큼은 걱정없이 살았는데 대청호로 인해 먹는 물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물부족 고통, 대한민국 어디에 또 있겠는가
“유권자 수 적어 홀대 아닌 홀대 받아”
“제가 이장을 맡고부터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먹는 물 문제 하나만큼은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물과 관련된 곳을 대상으로 발품을 팔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듯 그저 ‘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력하겠다’는 등의 전혀 설득력없는 말만 일관했다. 그들의 눈에는 아마도 막지리가 옥천군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 막지리 주민들은 물부족으로 식수는 물론 화장실도 마음놓고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막지리와 같은 마을이 대한민국 어디에 또 있겠는가, 생각해 보건대, 아마도 유권자 수가 적어 홀대를 받는 것 같다. 옥천읍처럼 유권자 수가 많으면 이러한 문제는 진작에 해결돼도 됐을 것이다. 외진 마을에 사는 것이 참으로 서글프다”
막지리가 안고 있는 서러움은 또 있다. 막지리에는 오래된 배가 한 척 있다. 이름하여 ‘막지호’. 그런데 이 배가 사용된지 오래되다 보니 배 이곳저곳에 구멍이 나 더 이상 배를 이용하다가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 옥천군에 건의를 했다. “이 배를 계속해서 사용할 경우 무슨 큰 일을 당할지 모르니 새로운 배를 하나 마련해 달라”고.
다행히 손 이장의 건의를 수용한 군의 결정은 좋았다. 하지만, 문제가 바로 발생했다. 손 이장이 건의한 배 제작 비용은 3억 원, 하지만 당시 옥천군 내수면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인근 오대리와 막지리 두 마을을 상대로 각각 1억5천만 원씩 배정을 하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다. 실수할 걸 실수해야 이해가 되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당시 담당 공무원이 일부러 그렇게 한건 아니었는지 하는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이후 그러한 사실을 군에 강력히 항의하자 울며겨자먹기로 각각 5천만 원 씩을 추가로 지원해 줘 그나마 내년 3월이면 전수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 역시 작은 마을에 사는 서러움이다. 주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생명줄과도 같은 배를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배 한척 제작 비용 3억 원으로 두 척을 구입하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도심도 아니고 산간 지역인 막지리 주민들이 얼마나 큰 요구를 한다고 그것까지 깎는단 말인가. 배라는 것은 하루 이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용해야 하고 그만큼 안전해야 하는 것으로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다는건 세 살바기 아이도 아는 사실 아니겠는가”
주민 23명에서 46명으로 늘려 군수와의 약속 지켜
하지만 군은 식수와 ‘막지호’ 제작비 약속 안지켜
손 이장은 기왕 맡은 이장직이 마을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방법이 있다면 능력 안에서는 다했다. 실제로 처음 이장을 맡을 때만 해도 마을 주민이래야 23명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히 배로 늘어난 46명이 됐다. 이러한 결과는 당시 군수에게 한 약속 때문이었다. ‘임기 안에 마을 주민 수를 배로 늘리겠다’고. 그래서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군은 약속을 어겼다. 마을 식수문제와 ‘막지호’ 제작비 모두.
이제 손 이장은 지칠대로 지쳤다. 더 이상 마을발전이고 뭐고 신경쓰고 싶지 않다.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주민 모두에게 골고른 혜택을 주기 위해 지난 세월 노심초사 심혈을 기울였는데 정작 군이 외면하고 있으니 더 이상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괜히 인간관계만 나쁘게 할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보다 더 유능한 사람에게 이장을 맡기고 이쯤에서 이장직도 내려 놓을 생각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지금까지 혼자만 손뼉을 쳐왔다는 생각에 억울한 생각만 든다.
okhs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