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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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5)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2.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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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가득 담은 말 모두가 충담(忠膽)

조헌이 유숙하는 집은 종루(鍾樓) 앞에 있는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었다. 지은 지가 오래되어서 너무 낡고 기울어져 도괴될 위험이 있었다. 낮에는 대궐 앞에 나아가 혹시 있을 임금의 비답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저녁이 되어서 빈손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그는 낮이나 밤이나 근심 어린 얼굴로 눈물만 흘리고 밤을 지새웠다. 그를 본 주인이 까닭을 물었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여전히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하루는 그가 밖에서 돌아오니 주인이 큰 나무로 지주를 세워 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그가 탄식하기를 “슬프다. 주인의 집은 이 나무가 있어서 넘어지는 것을 부지하여 주어 앞으로 수년 간은 지탱할 수 있겠으나 장차 나라가 기울면 누가 그것을 부호(扶護)하며 또 무슨 물건을 가지고 그것을 부지(扶支)하겠는가?”하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니 옆에 있던 사람도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단 하루도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는 날이 없었고 때로는 불길처럼 타오르는 분함과 울분에 못 이겨 흐르는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조헌이 도끼를 놓고 상소를 올렸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한양 바닥에 퍼졌다. 모두가 중봉의 충절에 놀라고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조헌에 대한 백성들의 관심이 달갑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너무 미워해서 편의를 봐주는 사람에게는 죄를 주려고 나섰다. 심지어는 그가 유숙하는 집주인까지 잡아다가 치죄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그의 친구들도 혹시 피해를 입지 않을까 꺼려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만나주려고도 하지 않았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정을 변치 않는 사람은 첨정(僉正)으로 있던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 1548~1622)와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1542~1621)이었다. 심희수는 청송인으로 노수신(盧守愼)의 문인이다. 1572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훗날 임진왜란에 명나라 제독 이여송을 영접하였고 판중추부사를 거쳐 좌의정에까지 이른다. 심희수는 날마다 조헌을 찾아와 술로 위문하고 시를 지어 주었다. 

秋月娟娟秋水淸 가을 달 가을 물은 곱고 맑은데
死生相吊影兼形 죽든 살든 따르는 것은 그림자뿐이로다
狂言滿紙皆忠膽 지면 가득 담은 말이 모두 충담이오니 
鼎鑊前頭戴聖明 형벌에 앞서 어진 님이 밝혀 주리라 

조헌이 대궐 아래서 임금의 비답을 기다리다 밤이 깊어 돌아오는 길에 달은 어찌 그리도 밝은지 심희수의 시에 차운한다.

娟娟秋月十分淸  아름답고 밝은 가을 달은
畢照人間品物形 인간 만물의 모습을 환히 비추네
若道孤臣有私曲 만약 외로운 신하 사사로운 마음이 있다면
餘光應許寸心明 남은 빛 마땅히 촌심(寸心)을 밝혀주리

한편, 조헌의 상소를 받은 조정이 발칵했다. 그렇잖아도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지 말라는 조헌의 청절왜사소(請絶倭使疏)에 분노한 선조가 소장을 불태워버린 사건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시정과 대신들을 비판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한 것이다. 옥당(玉堂 홍문관)이 먼저 조헌을 벌주어야 한다는 차자(箚子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간단한 상소문)를 올렸다. 이에 임금이 답하기를 “전후의 차자를 보건대 참으로 많은 애를 쓴 것이 가상하다. 그러나 조헌에 대한 의논이 너무 과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내가 이미 조헌의 말을 채용하지 않고 있는데 조정의 제공들은 무엇을 혐의하는가. 다만 제공의 언론은 그 중도(中道)를 다하고 대체(大體)는 힘써 그 공정함을 다하여 어진 것은 어질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여 주기 바란다. 아침저녁으로 국사에 힘써 인심으로 하여금 스스로 복종하게 한다면 조헌의 광돌(狂突)한 말 같은 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그렇지 않고 찬출(竄黜 벼슬을 빼앗고 귀양을 보냄)하기만 일삼는다면 지금 조헌에게 죄를 준다 하여도 이다음에 조헌과 같은 자가 또 나올 것이다. 그러면 무슨 이익이 있는가”하고 선조는 조헌을 귀양 보내는 것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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