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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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음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1.12.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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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되어 with corona로 covid19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방역체계와 생활이 시작됐다. 모처럼 경기장도 문을 열어 관객을 맞이했고 각종 전시관·박물관 등도 10인 정도의 단체 관람객을 맞이하게 됐다. 그렇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입장하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된다. 

마스크는 이제 생활필수품이 됐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착용하게 됐으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면서 확진자의 수가 2,000~3,000 명대를 오르내리는 뉴스를 보면 마스크를 평생 착용해야 하지 않나 하는 불안감도 가져본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인데 굳이 과태료 제도까지 해야 하는가 반문해 본다. 대다수가 잘 지키고 있지만 동시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한 불미스러운 소식을 보면서 과태료 제도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답답함을 좀 참고 불편함을 좀 참으면서 covid19의 종식을 기다리는 인내가 요구된다. 마스크의 불편함을 참는 것은 이웃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인내(忍耐),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왔고 배워왔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서는 딴짓하지 않고 선생님을 바르게 보는 수업 자세와 질서와 규칙을 지킴도 참음에서 비롯됨을 배웠다. 군대에 가서는 모기가 물어도 가려움을 참으며 차렷 자세를 30분이 넘게 하기도 했다. 기차를 탈 때도 연착이 되면 묵묵히 참고 기다렸다. 결국, 우리 생활 자체가 내 멋대로가 아닌 참음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런 참음의 모습들이 어느 사이 사라져 가고 각자의 자기 멋대로(그것도 개성이라는 미명 아래)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예로부터 인내는 뜻을 이루기 위한 필요사항이었다. 중학생 시절 안중근 의사의 유묵 ‘忍耐’를 보면서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라는 격언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졸린 눈을 비벼대면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래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인내라는 말을 요즘도 조카들이나 자식들에게 훈계용으로 잘 써먹고 있다.

참음은 여러 종교에서도 강조하는 말이다. 성경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하여 참된 성도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싯다르타는 “지혜로운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은 인내”라고 했다. 불가에서도 수행하는 기본은 인내이다. 수행의 기본은 정좌하고 유혹을 떨치며 명상에 잠기는 참음의 수련 과정이다. 

친지의 회사 직원이 covid19 양성자와 접촉했고 그로 인해 친지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고 한다. 2주간의 시간은 수양의 시간이었단다. 처음 며칠간은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그간 하지 못했던 독서도 하고 지내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얻은 것은 ‘참는 마음가짐’이었다고 한다.

친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서 지하철에서, 시내버스에서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마스크를 벗거나 착용하지 않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긴 세월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에 쌓인 삶의 지혜가 없었을까? 뉴스에서는 마스크 미착용으로 대중교통 운전자나 관계자들과 다툼 등으로 기소된 수가 수 백 건이라고 한다. 마스크 하나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나 있는지?

어느새 12월, 올해도 막바지에 들어섰다. covid19로 뉴스가 도배되고 모든 삶의 과정이 블랙홀인 양 그 속에 빠져들어 간 기분이다. 그러나 어둠 후에 새벽하늘이 밝아 오듯,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서 인내를 시험해 보아야겠다. 어릴 때 책상 앞에 써 붙였던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의 참뜻을 다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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