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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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3)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2.09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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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양대 간호학과에 올 수 없습니다. 문교부 규정에 전문대 교원은 전문대 졸업자, 4년제 대학교원은 4년제 대학 졸업자로 되어있어 저는 3년제 간호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올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씀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윤 원장님이 “아니 NMC 졸업생보다 더 유능하고 똑똑한 간호 인력이 우리나라에 어디 있단 말인가? 와서 가르치면 되지 안될 것 뭐 있어.” 하셨다. 법을 모르실 분도 아닌데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은 원장님은 NMC가 최고라는 인식에서 현실과의 괴리가 그만큼 안타까워서였을 것이다. 70년대 초 만 해도 대학교수들은 학사가 대부분이었고 박사는 가뭄에 콩 날 정도였다. 지금처럼 외국 박사가 넘쳐나도 교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은 모든 대학 규정에도 교수 임용조건이 박사학위 소지자로 되어있으나 그 당시엔 문교부 규정에도 4년제 졸업한 학사학위만 있으면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윤 원장님도 무척이나 아쉬워하셨고 나도 마음속으로 4년제보다 3년제가 오히려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던 나의 무지함이 새삼 원망스러웠다. 어차피 나는 교수를 해도 NMC 교수를 할 수 밖에 없는 팔자인가보다 생각했다. 

75년 1월, 큰아이가 태어났다. 12월에 시댁에서 분가해서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사하면서 육아 문제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올린 전임강사의 교육 공무원 발령이 다시 연좌제로 묶여 신원조회가 떨어지지 않던 차에 남편은 집에서 아들 양육하기를 원해 사표를 내라고 종용했다. 76년 입학시험까지 마친 후 나는 학교에 사표를 내고 그야말로 낯선 가정주부의 길을 가기로 했다. 

내가 학교에 근무하면서 3번의 입학시험을 치렀다. 그때는 모든 시험절차가 교수들의 수기로 이루어졌다. 지원자들의 수험번호와 이름, 교과목 점수들을 커다란 모눈종이에 볼펜으로 일일이 쓰고 교수 두 명 씩 짝을 지어 제대로 됐는지 확인 후 주판으로 학생 개인별 총점과 평균을 냈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전체 교수가 모여 등수를 매겨 합격자를 1등에서부터 추출해 명단을 다시 작성하는 절차를 거쳤다.

가장 힘든 과정은 성적을 주판으로 내서 다시 돌아가며 검산을 2검, 3검 하는 일이었다. 교수 두 명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은 교과목 성적을 부르고, 한 사람은 주판을 놓고 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성적 일람표를 몇 장씩 가져와 암산으로 금방 끝내고 또 가져다 순식간에 암산으로 끝냈다. 그렇게 순식간에 암산으로 총계를 내고 교과목 수로 나누어 평균을 내서 교무과장에게 갖다 주었다. 

첫 입학시험에서 그렇게 암산으로 후딱후딱 계산해서 넘기는 나를 보고 불안하게 생각한 교무과장이 놀라서 내게 입학성적을 함부로 냈다가는 큰일 난다며 말렸다. 심지어 내가 암산으로 한 성적 일람표를 다른 교수에게 주며 다시 계산해 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계산한 일람표를 재검한 교수들이 틀린 것 하나도 없다고 하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다들 어떻게 암산으로 한 그 많은 계산이 다 맞을 수 있냐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일이 있고 다음 해 입시부터는 아예 내게 성적을 암산으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물론 입시이니만큼 나도 긴장해서 암산해야 했다. 이때만큼은 군번 꼴찌의 임시 전임강사가 빛 을 발휘하여 기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머리 좋은 아기를 낳는 비결 
번역서 내다

드디어 76년 2월 학교에 사표를 내고 난생처음으로 소속없는 신분으로 가정주부의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74년 큰아들 임신 소식을 프렌드 씨에게 알렸더니 여전히 Dear Daughter of the East로 시 작한 편지를 보내주었고 나는 자상하고 사랑에 넘치는 이 편지를 읽으며 감격할 뿐이었다. 

“사랑하는 동양의 딸이 임신했으니 너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한 권 보낸다. 이 책과 함께 이 책에서 권장하는 모든 영양제를 보내줄 테니 책에 적힌 대로 먹고 건강한 아기를 낳기 바란다.” 

사랑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없이 진실 한 정성을 이렇게 이역만리 떨어진 나에게, 국경을 넘어서 이런 가슴의 뜨거움을 일으켜내는 힘이 바로 사랑이구나 생각했다. 그분의 말씀대로 그분의 이 귀한 사랑을 그분에게 갚지 말고 내가 네게 했듯이, 너도 그 누구에게 행하라 했던 그분의 말씀을 되새겼다. 그 편지를 받고 얼 마 후, 엄청나게 큰 상자의 국제소포를 받았다. 큰 상자 속에는 『Let’s have healthy children』이라는 책과 함께 엄청난 양의 갖가지 비타민 과 미네랄, 영양제 등이 들어있었다. 내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타민 A부터 B1, B2, B3, B6, B12, VtC, D, E, K, 엽산, 나이아신, 칼슘, 마그네슘, 아연, 간유구, 건조한 대구간 등 이루 다 셀 수 없는 영양제들 이 임신 기간 내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양이었다. 어떤 친정 부모가 미국에서 이토록 귀중한 책을 골라 그 책에 따라 처방된 영양제를 한국에 이렇게 산더미같이 보내줄 수 있을 것인가! 그저 감사함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무엇보다 프렌드 씨가 필독도서라며 추천한 책이 궁금해서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미국 최고의 영양학자 아델 데이비스가 쓴 책인데 임신 중 태아발달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의 효과를 세계적인 대학교 하버드, 예일 등을 비롯해 캐나다, 독일 등 과학자들의 실험결과를 토대로 아주 근거 중심으로 쓴 책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매일매일 교과서 읽듯 책을 읽어가며 밑줄을 그었고 읽다 보니 혼자 보기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시간이 되면 이 책을 언젠가는 번역해서 나 같은 임신부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면 이 책을 보내준 프렌드 씨의 정성에도 보답하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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