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7)
상태바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7)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2.16 1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금의 명(命)을 집에서 묵힐 수는 없다

한편, 상소를 올리고 임금의 비답을 기다리던 조헌은 친구들이 만나주기를 꺼려하고 유숙하던 집주인까지도 죄인 취급을 받는 서울에서 더는 기거할 곳도 없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향리 옥천으로 내려왔다. 

그에게 함경도 길주 영동역(嶺東驛)에 정배(定配)하라는 어명이 도착한 것은 그가 옥천에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1589년(선조 22년) 5월 8일 밤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조헌은 집에서 10리 가량 떨어진 율봉산장에 있었다. 의금부 이졸(吏卒)은 지난 3일에 내린 유배의 명을 받들고 옥천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옥천에 일찍 도착했으나 곧바로 어명을 전하지 않고 조헌의 집에서 오 리가량 떨어진 곳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졸들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헌의 거처에 이르렀다. 유배의 명을 전해 들은 조헌은 지체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모친과 사당에 하직을 고하고 즉시 떠날 차비를 서두른다. 이에 의금부에서 나온 이졸들이 이 밤에 길을 떠나는 것을 극구 말렸다. 

이졸들이 말하기를 “오늘 제가 아침에 도착했으면서도 감히 거처하는 곳까지 오지 않은 것은 제가 이곳으로 출발할 때에 저와 같이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조 제독은 어진 분이라 명을 받으면 반드시 일각을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모름지기 저녁에 그 집에 가서 사실을 전할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밤에 길을 떠날 준비를 하게끔 하라’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밤을 기다려 어명을 전한 것이니 원컨대 이 밤은 이대로 머물고 내일 아침에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이 밤에 떠나는 것을 만류하자 조헌은 “임금의 명을 집에서 묵힐 수는 없다” 하고는 밤에 집을 떠나 10리 밖의 안읍창에 도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잠 4형제와 금응신, 박득중 등이 찾아와 함께 유숙했다. 당시 조헌은 관직도 없었고 생활은 곤궁했다. 그러나 그의 귀양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나서서 노자를 보태고 필요한 물건을 들고 오는가 하면 음식을 대접하며 위로해 주었고 문인인 석계(石溪) 민욱(閔昱 1559~1625)은 길주 영동역까지 그 머나먼 길을 함께 따라갔다. 지나는 고을의 수령들도 너나없이 조헌을 위로하고 편의를 아끼지 않았으며 여러 사람들은 음식을 대접해 주었다.

조헌은 5월 8일 유배의 명을 받고 옥천에서 함경도 길주 영동역까지 2천 리 길을 걸어가는  38일 간의 유배 길을 기록한 일기를 남겼는데 이것이 북적일기(北謫日記)이다. 일기를 통해 유배를 떠나는 날의 광경을 돌아본다.

1589년(선조 22년) 五月 八日 갑인(甲寅), 조금 비(小雨)

저녁에 김오졸(金吾卒 의금부의 나졸) 석응련(石應連)이 옥천의 율현(栗峴)으로 달려와서 지난 초3일 길주(吉州) 영동역(嶺東驛)으로 유배의 명이 내렸음을 전해주다. 어머니와 사당에 작별인사를 하고 안읍창(安邑倉)에 유숙하다. 김잠(金箴) 4형제와 금응신(琴應信), 박득중(朴得中) 등이 찾아와서 함께 자다. 김잠이 암말을 주었기 때문에 행차에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길 떠나는 데 힘썼다. 이 때에 전염병(疹疫)을 앓는 아이가 위독하였다. 나졸 석(石)이 10일에 떠날 것을 권유하였으나 왕명이 지엄하니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다. 병든 말 두 필을 이웃 말과 바꾸다. 성주(城主) 사휴(士休) 남응서(南應瑞)가 글과 소주 2선과 노루 고기포 이속(二束)을 보내와 위로해 주었다.

五月 九日 을묘(乙卯), 조금 비(小雨)

인척(姻戚) 박언장(朴彦章)과 이원영(李元英)이 술을 가지고 와서 전별해 주고 박문중(朴文仲), 정회(鄭澮)가 와서 작별하다. 둔령(芚嶺)을 넘어 원암역(元巖驛)에서 유숙하다. 완도(完堵)를 머물게 하여 집안을 보살피게 하고 아우 전(典)과 아들 완기(完基 아들)가 먼 유배지로 따라나섰다. 박운길(朴雲吉)과 운거(雲擧)가 술을 가져와 이별하고 또 아침·저녁 음식을 차려서 관동(冠童)과 종자(從者)를 먹여주다. 향소(鄕所)의 이응기(李應箕), 김경탁(金景卓), 김광보(金光葆) 부자(父子)가 저녁에 와서 작별하고 주광문(周廣文)이 쫓아와서 작별하다. 그리고 신발(辛潑)과 박효신(朴孝愼)이 이별의 선물을 가져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