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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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4)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2.16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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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 당장 번역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아 우선 읽으며 한 상자 가득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책 내용에 따라 먹기 시작했다.

건강한 아기, 머리 좋은 아기, 예쁜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어떤 음식과 영양소가 필요한지를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로 신뢰도가 높은 연구 결과였기에 열심히 그대로 먹고 실천했다. 그 덕분에 나는 정말 건강하고 머리 좋고 잘생긴 아들을 낳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그만두어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하면서 두 번째 읽다 보니 정말 가치 있는 좋은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주부들이 부담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궁리했다. 무명의 내가 사재를 털어 책을 출판한다 해도 공유할 수 있는 보급의 문제는 남았다. 

나는 연구 끝에 당시 주부들이 가장 많이 보는 여성지와 함께 공급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앙일보」에서 발간하는 「여성중앙」에 전화했다. 주부들에게 아주 유익한 책을 번역했으니 잡지사 측에서는 나에게 원고 번역료만 주고 이 책을 출간하여 「여성중앙」과 함께 끼워 팔면 잡지도 훨씬 많이 팔릴 것이라고 설득했다. 잡지사에서 흥미를 느꼈고 결국 원고를 넘겼다. 내가 번역한 책은 『머리 좋은 아기를 낳는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여성중앙」과 함께 전국적으로 팔려나갔다. 나는 원고료만 받았지만 그 수입도 주부로서는 꽤 짭짤한 수입이었다. 처음 출판을 위해 내가 기자를 만나 원고를 내밀었을 때 그 기자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 책 진짜 본인이 직접 번역하신 것인가요.”

아마 기자 눈에는 28살의 앳된 주부 같지 않은 주부가 책을 번역했다고 하니 설마 하며 의심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듣고 물론 기분이 언짢아진 내가 그냥 있지는 않았다. 

“남이 번역한 것을 내가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로부터 일 년 후 다시 기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급하게 번역이 필요한 책이 있다며 번역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이 왔다. 급하게 출간해야 할 잡지사 사정이 있다고 했다. 잡지사가 계획한 일정이 정확히 두 달 남은 상황이었다.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었던 터라 나는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하고 그 번역을 맡기로 했다. 건네받은 원서 제목은 『The beautiful skin and hair care』였다. 

욕심으로 두 달 안에 책 한 권을 번역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놓고 나니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내가 만일 그 날짜에 맞춰주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니 책임감에 머리가 아찔했다. 죽어도 9월 초까지는 번역을 끝내야 한다는 각오로 밤낮으로 원서를 읽고 썼다. 그런데 그 두 달 기간이 하필이면 7월과 8월, 가장 무더운 여름철이라서 책상에 앉아 번역하다 보면 어느새 팔꿈치에 땀이 나서 책상과 마찰이 되어 팔 아랫부분이 빨갛게 무르고 통증까지 왔다.

그런데도 나는 책임감으로 참아내고 심지어 8월 초 가족과 함께 속초 해수욕장에 피서갈 때도 책을 가지고 가서 해변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엎드려 모래바람에 책갈피가 펄럭거리는 가운데서도 번역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8월 말에 번역을 마치고 기자에게 전화했다.

“약속대로 9월 초에 번역원고를 넘기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만날 까요.”

그러자 기자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뭐라구요? 진짜 번역을 다 했다고요? 아니 여름 두 달 동안 책 한 권 번역을 마쳤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나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9월 초로 약속하고 시작한 일이라 9월 초에 원고를 넘긴다는데 왜 그렇게 놀라세요? 도대체 나한테 진짜 다했냐고 물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그는 9월 초로 약속은 했지만 9월 초까지 끝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플랜 B를 계획하고 있었다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만난 자리에서 기자는 그 힘든 번역을 어떻게 두 달 만에 마칠 수가 있었느냐며 재차 묻고 또 물으며 예정대로 책이 나갈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출판된 책의 제목은 『고운 살결, 부드러운 머릿결』이었다. 

집에 있으면서도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번역료로 큰 목돈을 쥘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그 때 정말 고맙다며 예상치 않게 번역료에 보너스까지 얹어주는 행운도 따랐다.

논문 두 편 대신 각서 쓰고 교수 되다

전업주부로 생활한지 만 5년이 지난 81년 2월경 학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춘자 교무과장님이었다. 학교에 교수 한 분이 그만두셨는데 그 자리로 다시 나와 학교를 위해 일할 마음이 없느냐는 제안이셨다. 너무나 예상치 않은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주부로 사는 나를 교수로 다시 불러주시려는 그 배려가 무엇보다 감사했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예스’였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확답하지 못하고 며칠의 시간을 구했다. 

그날 퇴근한 남편에게 그 사실을 전하며 이번 기회가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무조건 직장을 나가겠다고 우겼다. 

남편은 처음엔 강하게 반대했다. 그 때가 둘째를 낳고 산후출혈로 사경을 헤매고 난지 겨우 9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의 건강상태로는 무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큰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고 둘째 아들은 겨우 9개월밖에 안된 시점이라 아이들의 양육이 중요하다는 이유도 내놓았다. 

남편의 반대 이유는 구구절절이 다 옳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 기회가 아니면 더는 대학에서 교편을 잡을 기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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