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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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49)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12.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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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고난의 2천 리 귀양 길

옥천에서 함경도 길주까지 2천 리를 걸어가니 발이 부르트고 다리가 부어서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조헌이 춘천부(春川府)에 들어선 것은 옥천을 떠난 지 열흘 째 되는 5월 18일이었다. 민가에 유숙하였는데 권덕여(權德輿 1518~1591)가 아우 참봉을 시켜 술을 보내와 위로하였고 태수(太守)가 음식을 대접했다. 

권덕여는 대사간을 지냈고 명나라에 성절사로 다녀왔으며 1583년에는 율곡을 탄핵하는 상소에 연명을 했다가 성주목사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그가 조헌의 행색을 보고는 놀라서 “참으로 철한(鐵漢)이다. 진실로 강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송나라 채원정(蔡元定)이란 사람도 이보다 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하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춘천을 떠나는 조헌을 전송하던 안변부사를 지낸 양사기(楊士奇 1531~1586)의 아들 양해성(楊海星)이 시를 지어 위로해 주었다.

士子胸襟稷契情  선비의 마음씨로 경륜은 직계와 같아
致君堯舜出於誠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려고 지성으로 노력했네
危言豈是羞唐介  위태로운 직간은 어찌 당개에게 부끄러우랴
嘉惠還敎吊屈平  아름다운 은총은 오히려 굴평을 조문케 한다
人笑我愚心不改  남들이 어리석다 비웃어도 마음을 고치지 않고
自知身否道之亨  몸이 부색한 줄 알건 만 도는 형통했지
如今縱値投荒命  이제 비록 귀양살이 버려진 신명이지만
他日應傳竹帛榮  먼 훗날 죽백의 영광을 전할 것이다

조헌이 유배 길을 나선 시기는 장마철이었다. 두 달 동안이나 계속된 비로 길은 흙탕으로 변해서 사람이 다니기가 힘들었다. 또 기호(畿湖)와 영동(嶺東)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이 병에 걸렸다 하면 10명 중에 7~8명은 죽었다. 옥천에서 아우 전(典)과 18살 된 아들 완기(完基)와 더불어 길을 떠났는데 영동(嶺東)에 이르는 2천 리 험한 유배 길은 말이 아니었다. 가는 도중 온 마을이 돌림병으로 인해 죽은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조헌은 의술에도 정통했다. 병을 앓고 있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두려움도 없이 환자를 찾아가서 침(針)을 놓아주고 약을 써주어 살아난 사람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무 탈이 없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때 아들 완기와 아우 전 그리고 두 몸종이 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길을 지체해가며 온갖 간호와 정성을 다했다. 아들 완기는 겨우 살아났으나 아우 전과 두 몸종은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귀양길이라서 마냥 지체할 수도 없고 약도 제대로 쓸 수 없어서 결국 동생을 잃게 된 것이다.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장례를 치를 힘이 없었다. 동생의 시체를 말에 실어 김포 선영(先塋)으로 보내 장사를 치르도록 했다. 시체를 실은 말이 지나는 곳곳에서는 중봉의 아우라는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탄식했고 어떤 사람은 말과 사람을 내어 호송을 해 주었다. 

김포에 이르렀을 때였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착하지 못한 아이들이 몽둥이로 말을 때려서 시체가 땅에 떨어졌다. 이에 호송하던 종놈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통곡하자 어느 노인이 와서 사연을 물었다. 종이 그 까닭을 말하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탄식을 하면서 “이는 곧 어진 사람의 아우인데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안타까워하며 서로 도와 시체를 호송하여 김포 선영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조헌은 함경도까지 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검을 목격하게 되었고 비통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귀양을 가는 자신의 처지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남쪽 지방의 정예 군사들도 북도에 와서 죽어가고 그 시체들이 거적에 싸여서 쌓여 있었다. 그는 시를 지어 그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生者誰知死者哀  산 사람 그 누가 죽은자의 슬픔을 알리오
簀屍歸趁玉門開  거적에 싸인 주검 옥문이 열릴 때에 돌아가네
從今難救干戈起  이제 전쟁이 일어나면 구제하기 어려운데
幾箇心肝委草萊  몇몇의 심간있는 자들이 백성을 시들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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