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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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6)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2.30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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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사는 사람이 내 친구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대화하던 중에 그 친구가 나에 대해 학교 다닐 때 천재였다는 둥 공부를 그렇게 잘했던 친구라고 입이 마르도록 내 칭찬을 한 모양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혜경이가 고마웠다. 그동안 내 입으로 내가 공부를 잘했다는 말을 시집 식구들한테 해본 적이 없이 살아왔는데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가, 그것도 시누이한테 학교 시절 내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고 생각하니 그랬다. 혜경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동네 살던 친구로 시험 때면 늘 나를 자기 집에 오라고 해서 함께 공부하자던 가까운 친구로 이대를 졸업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들어갔던 방송대학교를 편입하여 3년을 다니고 졸업했다. 방송대학교 첫 졸업생이기도 했다. 그 당시 초기에 방송대는 서울대 교수들이 강의했고 시험도 어려운 주관식으로만 출제되어 1기 졸업생은 입학생의 15%도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문제가 ‘냉장고의 원리를 기술하라’, ‘드라이클리닝의 원리를 설명하라’ 등이었고 화학 과목도 주로 반응 생성식을 기술하는 주관식으로 가득해서 학생들이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어쨌든 정신없이 바쁜 직장과 가정생활을 하면서 85% 이상이 탈락한 어려운 상황에서 제때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졸업과 동시에 나는 이화여대 대학원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NMC 3년, 방송대 3년 등 6년의 공부를 하고 나서야 석사과정에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가는 참으로 컸다.

이런 논문은 간호에 암적 존재입니다

1983년은 우리 대학이 1958년 스칸디나비안 3국에 의해 설립된 지 25주년이 되는 해였다. 학교에서는 교내외 간호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25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그날 기념식의 첫 연사로 그 당시 간호학 교수 출신의 국회의원을 모셨다. 

A 의원은 간호학 교수로서 워낙 인품이 훌륭하신 간호계의 리더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분이어서 강연에 많은 기대를 하고 나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한참 간호학 연구에 관한 강의가 진행되었을 때 A 의원께서는 “어떤 연구물을 보았는데 그 제목이 「간호사의 투약사고에 관한 조사연구」였다. 어떻게 간호학 교수가 간호사의 투약에 관한 오류를 스스로 대내외적으로 알려서 간호사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가 있느냐, 이런 논문은 간호에 암적 존재입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논문은 바로 얼마 전 내가 조사 연구하여 학회지에 실은 논문이라는 것을 나만은 알 수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노랗고 내 전체가 무너지는 듯했다. 아니 세상에 내가 간호계에 암적 존재가 되었다는 말인가! 이후 나는 정신이 없어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논문인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도저히 그 자리에 더 앉아 버틸 힘이 없어 살며시 나와서 내 연구실로 왔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내 논문이 암적 존재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고 그것은 내 자존감의 문제였다. 

논문을 쓰기 전에 많은 국제 학술지를 읽어보고 「Nursing research」 라는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에 실린 “medication error.”에 관한 미국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도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투약사고에 관해 연구해서 그 결과를 학회지에 실어 한국 간호사들에게 주의와 관심을 유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겠다는 판단에서 수행한 연구였다. 

미국에서도 수행한 연구결과로 국제적으로 공유한 연구이고 또 간호사들의 투약행위는 환자들의 생명과 직접 관계되는 중요한 간호행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 간호사들의 투약실태를 조사하여 그들에게 워닝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었다. 

행사를 마친 후 교수들이 학교로 내려와서 내게 왜 먼저 연구실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교무과장실을 조용히 찾아가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 건은 그냥 도저히 지나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A 의원께 내가 편지 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교무과장은 내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송 선생,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그냥 참으세요. 그분이 국회의원인데 잘못했다가는 학교나 송 선생이나 좋은 일이 있겠어요.”

선배 교수의 말도 일리는 있어 더는 고집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자존감이 무너져 그대로는 도저히 학교에 교수로서 근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밤을 새워 편지를 썼다.

“선생님은 평소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서 간호계의 거목으로 누구보다 간호계에 영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앞으로도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든 초청받아 오늘 같은 강연을 할 기회가 많으신 분이기에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 어려운 마음으로 편지를 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강연 중 쉽게 지나가는 한 예로 든 그 말 한마디가 그 당사자에게는 선생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수가 되어 꽂힐 수도 있음을 헤아려 주실 것을 일깨워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연못에 우연히 던진 돌에 어쩌다 맞은 개구리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에는 누구보다 모범생으로 살았고 또 사회에 나가서는 누구보다 성실한 직 장인으로 살아왔고 또 교수가 된 지금 누구보다도 학생과 간호사를 위해 도움이 되는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 그 꿈은 사라지고 저는 졸지에 암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이제 저는 한 남편의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은 아내와 엄마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저는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가장 부끄러운 아내와 엄마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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