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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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해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2.01.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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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壬寅)년, 호랑이 해(실제로는 음력 1월 1일 설날부터지만)이다.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에서처럼 호랑이는 무서움의 대상이면서도 존경과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이며 민화에 등장하듯 생활 속에서 가까이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임(壬)이 천간에서 흑(黑)이기에 올해는 검은 호랑이해란다. 얼룩덜룩한 호랑이와 흰 호랑이는 사진이나 동물원에서 자주 보았지만 검은 호랑이는 쉽게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화면에서 보아온 검은 표범과 비슷할는지?

얼룩덜룩하든, 검든, 희든 호랑이는 강함을 나타내기에 조선시대 무관의 흉배에 들어가게 됐고 왕실의 권위를 나타나는데도 쓰였다. 또한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로 등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건국 신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로 일컬어지는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8촌 형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중국을 여행하며 ‘열하일기(熱河日記)’라는 기행문을 쓰게 됐는데 그 기행문 속에 ‘호질(虎叱)’이라는 한문 단편소설이 들어 있다. 호질은 범 즉 호랑이의 꾸짖음이라는 뜻이다.

‘호질’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정(鄭)나라에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자 궁리를 하는데 마땅히 먹을 것이 없었다. 의원을 잡아먹자니 의심이 나고 무당은 불결하고 독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청렴한 선비를 먹기로 했다. 고을에 도학자로 이름이 있는 북곽선생(北郭先生)이라는 선비가 정절을 지켜 표창을 받은 동리자(東里子)라는 여인과 정을 통했다. 동리자의 성이 다른 다섯 아들들이 의심하여 어머니의 방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그러자 북곽선생은 허겁지겁 도망쳐 달아나다가 분뇨 구덩이에 빠졌다. 겨우 머리만 내놓고 발버둥 치다가 기어 나오니 이번에는 사람을 잡아먹으려던 큰 호랑이가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더러운 선비라며 탄식하고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했다. 북곽선생은 정신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만 살려주기를 빌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날이 밝아 아침에 농사일을 하러 가던 농부들이 오기에 북곽선생은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연암은 ‘호질’을 통해 북곽선생이라는 당시 지배계층의 위선과 비굴, 정절을 지켜왔다는 동리자의 패륜을 폭로하며 당대 지배층의 이념이 허위허식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호랑이는 똥이 묻은 북곽선생을 보고 “儒句臭矣(유구취의)”라 하여 “유학자(선비)가 구린 냄새가 난다”고 하여 깊이 있는 풍자를 하고 있다.

호랑이 해를 맞는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 오래전 읽은 ‘호질’을 호랑이 해를 맞으며 다시 읽음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겉으로만 질서를 지킨 듯 양심을 지키듯 행동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뉴스를 본다. 정치·경제·사회의 지도층들의 비리가 전해진다. 직(職) 대신 집을 택했다, 집합 금지를 어겼으면서도 자신들은 불가피했다, 이 말 저 말 늘어놓으면서 당당하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뉴스 등 이 시대의 북곽선생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해마다 새해를 맞으면서 희망을 담아보고 꿈을 그려 본다. 올해는 좀 더 나아지겠지라는 기대를 걸어왔다. 제발 올해만은 그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올해는 제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이다. 요즘 뉴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출마한 대선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이다. 출마자들 모두의 공통점은 “국민을 잘살게 해주겠다”라는 것이다. 제발 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안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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