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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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이야기
  • 안효숙 옥천작가회의 회원
  • 승인 2016.07.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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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깊게 잠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바람 한 점 없는 적요한 오후다. 한 여름의 더위는 가게 문을 나서면 마치 목욕탕 문을 막 열고 들어선 듯 뜨거운 기운이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지난 15년을 장돌뱅이로 떠돌아다니다 지난 봄 가게에 안착하며 여름을 맞게 되었다. 여름이면 사정없이 온 몸으로 쏟아지던 태양은 고단한 잠을 빼앗아가곤 했다. 다른 것은 어찌해서라도 다 참아낼 수 있었는데 옷 위로 내놓은 팔과 목, 다리에 땀띠가 돋아나 가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긁다보면 한 계절이 지나가도록 피가 맺히고는 했다.

요즈음 한가한 시간에는 밖을 바라보며 장터를 떠올린다. 장터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울까.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더니 다시 거리에서 일하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 것만 같았다. 그래도 땀내 나는 장터가 그리웠다. 오래도록 찾아다녔던 금산장, 보은장, 논산장에서 화장품을 사가던 단골 손님이 내가 장터를 떠나자 물어물어 가게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게 뭐라고 여기까지 먼 길을 찾아 오나 싶어 단골손님을 보며 숙연해지며 감사했고 사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기도 했다.

여름이 시작되던 일요일.

단골손님들이 많이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금산장을 가기로 하고 가게문을 닫았다. 모처럼 운전대에 앉으니 가슴이 설레었고 마치 소풍가는 듯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어서 빨리 가서 주변에 함께 했던 다정했던 장꾼들과의 만남도 기다려졌고 십 년을 넘게 장날을 기다리며 찾아와주었던 할머니들을 뵙고 싶었다.

장이 가까워지면서 지쳐있던 몸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고 있음이 느껴질만큼 나는 더없이 신이 났다. 반겨주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나누면서 내 몸이 아니 내 마음이 아직 장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손님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찾아오고 안부를 나누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작은 오빠의 죽음을 전달하는 큰언니의 흐느낌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아득함을 느꼈고 순간 장거리가 사라지고 구덩이에 파묻히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누구보다 거리를 떠돌던 일을 가슴 아프게 여겼고 가게를 얻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던 작은 오빠. 

가게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전화기너머로 ‘내 동생...그동안 고생 많이 했는데.....내 동생 장하다.’ 그 한마디로 작은오빠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펴놓았던 전을 접고 작은오빠가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청주로 향했다. 작은오빠는 참으로 따사로운 사람이었다. 공무원으로 명예퇴직을 한 후 주위의 만류에도 건강하니 일을 하겠다며 청주의 한 백화점에 청소부로 취직을 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급료로 알코올 병원에 의복을 사 보냈고 나처럼 글쓰기를 좋아했던 작은오빠는 문학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작은오빠의 부음을 듣기 보름 전 지방의 문학단체에서 공모하는 수필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며 전화기 너머의 작은오빠는 몹시 기뻐했다. 그 상금의 전부를 작은 도시의 나무 심는데 기부했다. 역시 ‘오빠다워’ 하며 오빠의 등단을 축하해 주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오빠의 대상을 축하해주지 못하고 장례식장에 가서야 오빠의 유고작품이 되어버린 글을 읽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읽어 내려갈 수가없었다. 선했던 작은오빠. 백화점에서 그 힘든 청소 일을 하다 보니 공무원 재직시절 허투루 입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왜 더 친절하게 하지 못했나를 후회했고 남은 인생은 가족을 위하고 힘든 사람을 위하며 살겠다고 쓴 오빠의 마음을 읽었다.

청소를 하다 휴식시간에 임산부를 보면 조카가 생각나 쇼핑 가방을 앞서 들어주었고 늙고 힘없는 사람을 보면 부모님이 생각나 부축하며 따라다녔다고 했다. 작은 오빠의 유고작품이 되어버린 여섯 편의 글을 읽으며 글 속에 담겨진 작은 오빠의 다정하고 오빠가 가끔은 쓸쓸하기도 했구나 하는 마음을 읽게 되었다.

조금만 형편이 더 나아지면... 아이들이 자리를 잡으면 ... 그 때는 찾아가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지.. 했던 그 날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작은 오빠가 떠나고 여름은 더없이 뜨거웠고 숨이 막혔다.

어디서나 작은오빠는 영정사진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떠돌아다녔고 나는 가게로 돌아와 손님이 없는 저녁 시간이면 오래도록 숨죽여 울었다. 슬픔은 어둠처럼 따라와 놓아주지 않았다. 언젠가 너는 누구보다 잘해낼 수 있을 거야. 했던 작은 오빠의 말처럼 나는 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슬픔이 찾아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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