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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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53)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5.04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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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나는 마이크를 잡고 힘주어 답했다. 

“여러 교수님이 3년제 교수들의 단합된 힘으로 나를 학회장으로 뽑겠다는 의견을 주셨는데 감사하지만 저는 절대로 그런 학회장은 할 마음이 없습니다. 대한간호학회는 3, 4년제 모든 교수가 회원인 단체인데 3년제 교수 숫자가 우세하다고 해서 3년제 교수들이 밀어서 되는 반쪽 짜리 학회장은 하고 싶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학회까지도 이분법적으로 우리가 양분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분명히 말하건대 3, 4년제 모든 교수의 고른 지지를 받아 당당하게 선출되는 학회장이 아니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밝힙니다, 또 간호협회도 따로 만들자는 의견을 주신 교수님도 계셨는데 농담으로 알겠습니다. 쪼개지고 갈라지고 하는 분열 속에서는 간호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서로 어렵고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우리는 절대 둘로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두 의견에 대해서 분명히 반대했고 양분된 어떤 단체에서도 회장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전문대학 교수, 
첫 대한아동간호학회장으로 선출되다

사실 3년제 교수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 대해 사적으로는 나도 100% 공감했다. 모든 학회 회장은 무조건 4년제 대학교수가 하고 나머지 임원 총무나 각 부장 등을 3년제 교수가 맡아 한 것이 사 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대한아동간호학회도 마찬가지였다. 회장은 선출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4년제 대학교수가 알파벳순으로 돌아가면서 먼저 학술이사가 되어 2년 임기를 마치면 그다음에 의례적으로 학술이사가 차기 회장을 맡는 식이었다. 

97년 아동간호학회장에 경희대 조결자 교수님이 되었다. 회장이 된 후 조 교수님이 내게 전화를 주셨다. 

“이번에 학술이사는 송 교수님이 좀 맡아주세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학술이사는 하고 나면 자동으로 회장이 되는 자리인데 회장은 4년제 교수가 관행적으로 해오지 않았는지요? 그러기에 저는 학술이사로 적절한 사람이 못됩니다.”

관례에 비춰볼 때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또 전화를 주셨다. “정말로 학술이사를 맡아주세요. 만일 송 교수가 학술이사를 맡지 않는다면 나도 학회장을 맡지 않겠어요.”

그래도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차기에 학회장을 맡지도 못할 학술이사를 해서 우스운 사람이 되기 보다는 가만히 있는 게 낫지요. 교수님께서 저를 인정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저는 그런 학술이사는 절대로 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에게 학술이사 임기 이후 학회장을 현행대로 보장해준다면 모르지만 그런 말씀이 없었기에 또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다시 전화하여 같은 제의를 하셨고 그때는 내가 먼저 물었다.

“학술이사를 마치면 제가 다음 회장을 하는 것입니까?”

“물론이지요. 학술이사를 하면 차기 회장을 하게 되어있으니까요. 송 교수는 누구보다도 회장을 잘할 것으로 믿고 있어요.”

그것으로 최소한의 내 자존심은 지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고 선배 교수님의 배려에 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싶어 받아들였다. 2년간 학술이사로 최선을 다해 논문심사위원으로 학술지를 발행하고 매년 학술 대회를 개최하는 등 나름 성실하게 직무에 임했다. 3년제 교수로는 처음으로 학술이사를 맡았는지라 그 책임감과 부담감은 컸다. 내가 만일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모든 3년제 교수들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처음으로 나를 누구보다 인정하여 3년제 교수로서 학술이사를 시킨 회장의 입장도 난처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2년 임기가 끝날 무렵인 99년, 드디어 대한아동간호학회 총회에서 회장을 결정하는 날이었다. 사회자는 관행적으로 학술이사가 회장으로 추대해 온 관례에 따라 나를 회장으로 인준해 달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연대 K 교수가 일어나 우리 학회 회칙에 보면 회장 선거에 관한 조항이 빠져있으니 오늘 회의에서 회장 선출에 관한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회장을 뽑자고 주장했다. 4년제 교수의 반란이 저런 식으로 표현되는구나 싶었다. 이제까지 4년제 교수들이 관행적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들만 하기 위해 고의로 회장 선출규정을 만들어 놓지 않고 내가 회장이 되려고 하니까 법을 만들어 그 법에 따라 선출하자고 하는 것은 사실상 생떼였다.

그 의견에 전남대 P 교수가 일어나 “여기 계신 분들은 전부 교수들인데 그야말로 법에 대한 상식도 없습니까? 오늘 만든 법은 통과해도 다음부터 적용하는 것이지 이 자리에서 만든 규정을 즉시 지금 적용한 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번은 지난해까지 시행했던 관행에 따르고 오늘 규정을 만들되 다음 해에 적용해야 합니다.”

나는 나 때문에 갑론을박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몇 번이나 일어나 내 의견을 말하려 했으나 조 회장님을 비롯해 총무인 서울대 최명애 교수가 자꾸 일어나려는 나를 제지하며 참으라고 했다. 나는 더는 그대로 듣고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오늘 토의의 장본인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회장은 이 자리에 참석하신 회원 교수 여러 분들이 투표해서 선출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제가 학술이사를 했다 고 해서 반드시 제가 회장을 맡아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나보다 더 우리 학회를 위해 회장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한 교수님이 있다면 당연히 그분이 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투표로 선출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바로 당사자인 나의 투표 제안에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는 사회자인 최명애 교수에게 투표용지 준비를 요구했고, 그렇게 투표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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