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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2.05.0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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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춘수는 그의 작품『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하여 이름을 불러주는 의미인 실존의 가치, 즉 미확인 가운데 확실한 존재 의식의 확인을 해주고 있다.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상호 간에 주체적인 만남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 가운데에서 이름의 활용, 존재의 유익한 활용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J.G. Frazer는 “언어에는 영혼이 깃들여 있다”라고 하여 언어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도 가끔은 “말조심 해”, “말대로 되는 세상이야”라고 한다. 언어에는 물리적인 공기의 파동이 아닌 그 무엇인가가 내재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자식의 훈계에서 결코 욕설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학자가 될 녀석”, “이 착한 녀석”,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될 녀석”등으로 욕설 대신 미래를 축복하는 말로 훈계하라고 하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좋은 의미를 부여하여 존재의 가치를 높여 주면 좋겠다. 집에 들어오는 딸에게 “우리 공주 잘 다녀왔나요”라고 한다면 딸이 공주이고 어머니는 왕비가 되지 않을까? 야간 학습에 지친 아들의 등을 토닥이며 “우리 왕자 조금만 더 힘내”라고 한다면 아들은 왕자이고 아버지는 대왕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가 함께하는 가정은 품위가 있게 되고 존귀함의 가풍이 있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타인에게 배려하게 되는 폭넓은 인성의 자녀들이 되지 않을까?  

무가치한 존재에게 ‘꽃’이라고 불러 줄 때 그 존재가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듯, 단순한 자식 이전에 공주로 왕자로 불러 주면 그 자식이 공주와 왕자가 되고 아울러 나는 왕과 왕비가 되는 것이다. 

일전에 모 텔레비전 리포트에서 젊은 주부가 시어머니를 ‘그 사람’, ‘그 여자’라고 지칭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참으로 어이가 없어 한동안 멍한 상태로 화면만 응시한 적이 있었다. 결국에는 그 주부도 그 여자로, 그 사람으로 전락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어떻게 남을 불러 주는가에 따라 내 존재도 가치가 커진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체득시켜 준다면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 가치를 높여 주며 배려와 이해의 교양있는 아이들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5월,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이제 좋은 호칭을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다. 우리 선현들은 일찍이 자녀들이 성장해 가면서 자(字)와 호(號)를 사용하여 이름 외에 부르도록 하였다. 자나 호는 그 사람의 인품에 어울리도록 스승이나 부모 등 윗사람이 지어주기도 하였다. 자녀들에게 자나 호를 지어주면 어떨까?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의미라고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이해하는 폭이 다르다는 말이다. 아이들을 높여 주는 호칭은 아이들을 당당하게, 기가 살게, 떳떳하게 성장하게 하며 이해하고 배려하며 풍부한 교양인으로 자라게 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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