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여성] ‘평화서림’은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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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여성] ‘평화서림’은 나의 집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5.19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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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세월 문구점 운영 ‘평화서림’ 정길순 씨
“손님들하고 말하고 지내니 나이 먹는 줄 모르고 살았다”고 말하는 ‘평화서림’ 정길순 씨.
“손님들하고 말하고 지내니 나이 먹는 줄 모르고 살았다”고 말하는 ‘평화서림’ 정길순 씨.

천생의 인연이었는지 여동생이 양보했던 중매로 만난 지 1달 만에 결혼해 옥천에서 50여 년을 살아온 정길순(78) 씨. 남편 이익세(82) 씨는 아내 정 씨에 대해 “지금도 이쁘고 다 잘해서 좋아요”라고 한다.

경상남도 거창군이 고향으로 젊은 시절 동생들 공부 가르치고 뒷바라지에 3남매 자녀까지 훌륭히 키워냈다. 아버님이 하시던 ‘평화서림’을 물려받아 책은 정리하고 부부가 그자리에 문구점을 50여 년을 운영하며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녀는 “내가 옥천으로 시집와서 우리 집 양반이 돈을 좀 지원해줘 애들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옥천은 어떤 곳인가

옥천은 이제 고향이다. 옥천은 사람들이 순하고 편 안 가르고 좋다. 네편 내편 안 하고 사람들 자체가 순하다. 남한테 조금 잘못하면 쏴붙이고 그런 게 없다. 물에 물탄 듯 함께 잘 섞인다. 애들도 순해서 엄청 좋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도 그대로다. 별로 변하지 않았다. 경찰서도 그대로 있다. 운동회 때나 소풍 갈 때는 손님이 많았다. 그때가 좋았다. 버스 타고 다니면서 물건을 가져왔는데 그땐 힘들었다.

보람이 있다면

나는 다 즐겁고 좋다. 내가 물건 주문해서 갖다 주고 그것으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게 좋고 선생님들이 잘 배웠는지 진짜 착하고 정직하고 하나같이 됨됨이가 조용하고 점잖고 좋다. 우리는 차 운전을 못 해서 가끔 택시로 다니는 데 택시 운전사도 선생님들한테 놀란다. 선생님들과 상대하니 말도 행동도 함부로 안 하고 깨끗하고 너무 좋다고.

평화서림은 어떤 의미인가

난 여기가 엄청 좋다. 마음이 편하고 여기서 조금씩 팔아도 좋고 학교서 주문 들어오면 더 좋다. 여기서 맨날 이거만 했으니까 다른 생각은 없고 남편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게 좋은 나의 삶의 전부이다. 

일하는 것 자체를 즐겁게 하니까 건강한 것 같다. 딴생각 안 해서 가게로 사람 오는 게 좋다. 손님과 대화하며 사는 게 재미있게 살아가는 하나의 이유다. 손님은 삼양초등학교 학생도 학부형들도 많다. 학교 선생님들하고 손님들하고 말하고 지내니 나이 먹는 줄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살았는데 어느새 뒤돌아보니까 나이를 엄청 많이 먹었더라. 내가 재작년에 나이가 많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남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여기서 일만 하고 다른 생각없이 살았다. 물건 주문하면 갖다 주고 없으면 채워두고 맨날 그랬다. 그래서 하루가 짧았다. 

지금까지 가게를 안 쉬었는데 쉰 날은 친정 갈 때와 결혼식 갈 때였지 그 외에는 한 번도 문을 안 닫았다. 가게는 나의 집이다. 

앞으로 희망이라면

요새는 장사가 잘 안된다. 그래도 세가 안 나가니 먹고 살만은 하다. 가게를 남한테 넘길 때는 물건값을 하나도 안 치고 세만 받게 될 텐데 그러면 너무 아깝다. 다른 사람들 얘기로 가게를 정리하고 물건을 싹 치우면 물건은 그저 내버리게 된다고 하더라. 많이 허탈할 거다. 그래서 자식들이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아버님 때서부터 일군 재산으로 우리도 지금까지 일구고 했으니 아들이 이걸 이어받아서 계속 연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지금 직장 생활해도 60 전후로 끝나는데 그러면 남은 세월을 어떻게 밥 먹고 살겠나. 애들이 직장 생활하고 있으니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아들이 내려와서 이 가게를 지켰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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