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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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66)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2.05.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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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請斬倭使一疏
왜적의 침공에 대비하라

“신은 삼가 생각컨대, 전하께서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있어 스스로를 반성하여 보아도 늘 정직했고 전하께서 사대(事大)하는 정성은 신명(神明)에 질정할 수 있고 전하께서 이웃나라를 돌보는 도리는 먼데 사람을 회유시켜 돌아오게 한다는데 부끄러움이 없고 전하께서 백성을 보호하시는 인자함은 늘 필부(匹夫)라도 손상이 있을까 염려하였고 전하께서 변방을 공고히 하는 모유(謀猷)는 늘 스스로를 잘 지켜 침략받는 일이 없게 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증자(曾子)가 이른바 ‘상대가 부(富)를 들고나오면 나는 인(仁)으로 맞서고 상대가 벼슬을 들고나오면 나는 의(義)를 가지고 맞선다’는 것입니다. 이를 확대해 나간다면 진(晉) 나라, 초(楚) 나라 같은 부강도 두려워 할 것이 없는데 더구나 수길(秀吉) 같은 필부의 용맹이겠습니까. 그가 칼을 품고 임금을 시해할 적에는 사람마다 드러내어 죽일 것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가 사람을 삼대를 베듯이 했을 때에는 귀신도 은밀히 벨 것을 모의했을 것입니다. 그가 죄없는 이들을 해친 것이 삼묘(三苗) 정도 뿐이 아니며 우리 대방(大邦 큰 나라)을 엿보니 귀방(鬼方 귀국)이야 말할 것이 없습니다. 온 천하가 다 같이 분노한다면 수고롭게 전쟁할 것도 없이 흉역 완안양처럼 저절로 죽을 것이니 간서(簡書)를 빨리 보내지 않는다면 왜적이 뜻밖에 출동하여 중국이 크게 놀랄 것입니다. 자사(子思)가 ‘모든 일에 있어 미리 준비를 하면 그 일이 잘되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잘못되는 것이므로 사전에 일에 대한 계획을 확정해야 잘못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조헌은 일본의 도발을 기정사실로 보고 조속히 중국에 알릴 것을 촉구했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기 왕을 시해하고 사람 죽이는 일을 삼대 베듯이 할 때에는 그 행실로 보아 천하를 침략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온 천하가 다 같이 한뜻으로 왜적의 침공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한다면 충분히 이를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수길이 우리나라에 대하여 나날이 삼켜버릴 계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마도주를 죽이고 은밀히 자신의 복심인 평의지를 보내어 대신 수비케 하였으니 우리의 왼손을 빼앗아 첩보를 얻을 길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또, 사신 신장(信長)을 보내어 드나들며 정탐하게 하면서 탐문할 곳은 회사(回謝)한다고 하여 갑자기 출병할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달에 대마도에 군대를 숨기더라도 상하가 말하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크게 거병하여 쳐들어올 근심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그 감춰진 재앙에 마음이 참혹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성대하게 갖추어 대접하여 중국 사신을 접대함과 다름이 없습니다. 적사(賊使)가 두 길로 나누어 올라옴에 양쪽으로 갈라서 대기하였으며 영남·호남의 각 고을에서 백성을 동원하여 원역(院驛)에 나가 여러 날을 기다리다 맞이하였습니다. 시일은 자꾸 흘러가건만 하나라도 방비에 대한 일을 돌보지 않고 있으니 비록 안진경(顏眞卿)과 같은 선경지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참호를 파고 성을 완벽하게 할 계책을 세울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우리 사신을 대우한 것은 매우 박하게 하였는데도 우리는 먼저 기운을 잃은 기색을 보여 왜노(倭奴)로 하여금 우리의 장리(將吏)들에게 교만을 부리기를 천례(賤隸)들에게 하는 것과 같이해도 감히 한 마디의 예의(禮義)로써 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후대하라는 분부는 실로 국명(國命)을 위축시켜 영원히 스스로 진기할 수 없게 하고 우리의 인력(民力)을 손상시켜 감히 적을 물리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니 어찌 통곡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풍신수길은 무력으로 일본 십도(十島)를 제압하였으니 조선의 정복도 가볍게 생각한다고 판단했다. 조헌 자신도 왜적에 대하여 ‘천하의 강구(强寇)’임을 시인하였다. 이것은 심히 경계할 일이다. 

그리고 왜사(倭使)에 대한 지나친 접대가 오히려 적을 더욱 교만하게 하고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는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편으로 침략 준비를 착착 진행하면서 이와 같이 오만하게 구는데 조선은 이들을 매우 환대하여 더욱 방자하게 만들고 스스로 위축되어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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