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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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55)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5.19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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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상담센터의 봉사활동 상황은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았고 주요 일간지와 지상파 방송들에서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와 상담센터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조선, 동아, 중앙 등 주요 일간지는 물론 KBS, MBC, SBS, 경기방송, 케이블 육아방송까지 많은 매체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는 우리 학회 이름으로 큐티 기저귀의 품질을 보증한다는 문구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검증하기 위해 P&G사에 기저귀의 품질을 테스트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P&G사는 이에 대한 과학적인 실험결과를 확인해주기 위해 미국 본사 실험팀과 함께 세계적인 소아과 의사인 브라질톤(Brazelton) 박사도 함께 내한하여 우리 학회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저귀의 우수성을 입증해 보였고, 브라질톤 박사는 나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여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시행한 무료 육아 상담 사업은 직장맘과 아기 돌보는 할머니 또는 육아도우미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나는 자문 교수들과 간호사들에게 “아동간호학 전공자들로서 소외된 아동들을 위한 육아를 돕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임을 강조했다. 또 이러한 사업은 국가가 나서서 할 일이지만 국가가 아직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 교수들이 나서야 한다는 점 역시 강조했다. 

1년에 3만 건 정도를 상담했는데 엄청난 실적이었다. 특히 의료혜택이 미치지 않는 산간 도서지방, 제주도 등에서 “갑자기 아기가 토해요, 경기를 해요, 열이 나요, 설사해요, 푸른똥을 싸요.” 등 흔히 일어나는 아기들의 급한 문제를 병원 대신 전문간호사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차근차근 해결해 주면 그들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했고 고마워했다. 지켜보는 나 또한 흡족했다.

이렇게 나는 3년제 대학교수로서 첫 선출 회장으로 뽑아준 마음의 빚을 학회 회원들에게 확실하게 갚았다. 아울러 4년제 학과 교수들에게는 반면교사가 되었고 3년제 간호과 교수들에게는 자부심과 희망을 주는 것으로 내 신명을 바쳐 사명을 다했다.

따르릉 아기상담센터 
매일유업과 다시 손잡다

P&G사와의 3년 계약이 끝나갈 무렵 고민이 컸다. 내가 아동간호학회장을 그만둔 후에도 상담센터는 변함없이 이끌어 갔으나 계약 기간 만료로 이 사업 역시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을 닫기에는 그간 3년간의 성과가 성공적이어서 상담 대상자들인 직장맘과 육아도우미들도 문을 닫으면 안 된다고 호소해왔다. 그간 보람 하나로 힘든 상담을 감당했던 간호사들도 사업을 접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업이라며 아쉬워했다. 또 소장인 나로서는 3명의 간호사가 실직되는 부담 또한 적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해도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기에 뜻과 열정만 가지고는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사업을 계속하려면 기부금을 내줄 다른 기업을 찾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 사업에 기금을 내줄 성격의 기업이라면 아기 관련 사업이라야 했지만 그렇다고 아기 보험, 아기 옷, 장난감 회사 정도로는 어려울 것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생각해낸 기업이 분유 회사였다. 

나는 직원들에게 국내 분유 회사 현황을 다 파악해 보도록 했다. 네 개의 분유 회사 현황이 나왔다. 그중 국내에서 가장 큰 분유 회사 두 곳 을 선택했다. N 사는 아직도 사주가 1세대인데 반해 매일유업은 2세대인 40대 젊은 아들이 사장인 점이 내 눈을 끌었다. 1세대보다는 2세대 젊은 사장이 기업의 사회 환원에 더 진취적일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매일유업 김정완 사장을 일단 만나서 이 아 기 상담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결심한 날부터 가슴이 콩닥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교수가 초면인 사장에게 전화해서 다른 것도 아닌 돈 문제로 만나자고 할까? 혹시 나를 제정신이 아닌 여자로 보거나 최소한도 어딘가 이상한 여자로 보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시도하지 않은 것만 못하는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면 용기가 나다가도 또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한 짓 같아서 도무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남에게 돈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이렇게 피가 마르는 일인 줄은 정말 몰랐다.

내 사적인 일이 아니고 봉사 사업이라는 명분이 있기에 그래도 일단 나는 용기를 내어 비서에게 일렀다. 김정완 사장 전화번호를 주면서 연결되면 나를 바꿔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의 부담감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것이었다. 비서는 몇 번 전화해도 지방 출장 아니면 해외라서 통화가 안 된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비서가 내게 연결이 안 된다고 말할 때마다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전화가 연결되는 것이 정말 두려웠다. 무어라고 말을 할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니….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는 게 돈 부탁임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특히 내가 가장 싫어하고 못 하는 부분이 남에게 부탁하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인데 제대로 걸렸다 싶었다. 사실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탓에 비서에게 “이번 한 번 더 연결해서 통화가 안 되면 그만두자.”고 말하기까지 했다. 은근히 전화 연결이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연결이 안 된다는 핑계로 그만 접고도 싶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내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김 사장님이십니다.”라는 비서의 말에 정신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할지 몰랐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당황한 적이 없었다.

“여보세요? 김 사장님이세요? 초면에 죄송합니다. 제가 김 사장님을 뵙고 꼭 상의드릴 일이 있는데 제가 사장실로 찾아가 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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