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여성] 봉사는 주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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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여성] 봉사는 주는 기쁨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6.09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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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면 조점자 씨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는 생활신조로 살아온 조점자 씨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는 생활신조로 살아온 조점자 씨

“내가 야간 대학이라도 다니는 게 꿈이었는데 자식들 4년제 대학으로 다 보내서 성공했다.”

군인인 남편을 따라 스물 다섯살에 옥천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가 남편 내조는 물론 틈틈이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살아온 조점자(여, 60) 씨. 고향에 돌아온 지금은 남편과 함께 부족한 농촌 일손 무료 돕기와 쓰레기 줍기 등 봉사하며 옥천을 위해 일하고 있다.

포천에서 마을체육대회나 군민의 날에 음식을 하는 특별한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효부상과 육군참모총장상 및 이동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로 교육장 상과 군의장 상, 감사패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러한 인연으로 군서로 찾아오는 지인들은 그녀가 옥천 사람임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 그녀는 겸손했지만 포천시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한 옥천을 빛낸 여성이었다.
그녀에게는 주변에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남다른 재주가 있다. 사람들은 “저 끼를 여태 어떻게 감추고 살았을까” 한다. 경기도농협과 한국예절문화원에서 실시한 ‘전통관혼상제례’ 교육과정을 이수한 이색 이력도 있다.

고향은 나에게 어떤 곳인가

엄마 같은 품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친정도 시댁도 여기다. 남편과는 군서초 52회 졸업 동창으로 남편 친구가 내 친구, 내 친구가 남편 친구다.

시아버지가 92세이신데 밥상에 수저 하나 놓더라도 집에 어른이 계시면 찌개를 항상 끓여서 드려야 한다. 자다가도 ‘내일 아침 무슨 국을 끓여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새소리, 저녁에 나와 집 앞 밭에 물 주다 보면 두견새 소리 듣는 게 좋다. 포천도 시골이지만 아침에 새소리는 못 들었다. 고향에 오니 마음에 편안함이 느껴져 그런지 몰라도 새소리가 들리더라.

봉사는 어떤 의미인가

봉사는 말 그대로 뿌듯함이다. 남편이랑 같이 봉사를 하고 오면 잠자기 전에 가만히 생각해 본다. 마음이 뿌듯하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크다. 우리 일도 바쁘지만 바빠도 내 일을 제쳐놓고 해주는 게 봉사다. 우리 일은 그 이튿날 새벽에 저녁에 한두 시간씩 일찍 일하고 늦게 끝마치면 된다. 내가 부지런하면 된다. 포천에서도 5남매 키우며 그런 식으로 봉사를 많이 했다. 이동면 부녀회장으로 상을 받았는데 면장이 축전 띄워주고 했다. 지금도 옛날 면장님 5명이 면장할 때 봉사를 많이 해줘서 고맙다고 연락이 온다.

2002년부터 어린이 지키미 ‘목석회’를 만들어 빨간 깃발 들고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하는 활동을 했다. 그때 파출소장이 나를 추천해서 교육장 상을 받고 최초로 포천신문에 교장선생님과 함께 나온 적이 있었다. 부녀방범대 발단식 때도 파출소장 등을 초대하며 내가 음식해서 마련해 부녀방범대를 열었다.

한 번은 이사를 가야 했는데 이사를 못가게 했다. 연탄보일러인데 싸게 준다고 해 이사 안 가고 남편이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담도 없는 집을 둘이서 담장도 쌓고 군인 아파트 안 들어가고 살았다. 그 후 아들 낳았다고 시어머니가 빌라를 사주셔 이사 가게 되었다. 

목표나 희망이 있다면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부자가 되고 싶다. 우리 자식들 직장 잘 다니고 건강하고 특히, 특전사에 있는 아들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거다. 남편이 협심증과 당뇨가 있었는데 농사짓고 나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포천에 살 땐 당뇨약을 먹어도 당이 안 떨어졌는데 지금은 당이 떨어지고 살도 많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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